홍성사에서는 한국고등신학연구원(‘키아츠’, Korea Institute for Advanced Theological Studies)이 기획한 “믿음의 유산” 시리즈로서 목회자와 신학자를 포함한 성직자의 설교를 묶은 “한국 기독교 지도자 강단설교” 가운데 《길선주》 《김익두》 《이성봉》(이상 2008년 1월) 《주기철》(2008년 4월)에 이어 다섯 번째 책인 《김교신》을 내게 되었다.
김교신(金敎臣, 1901~1945)은 한국 교회가 낳은 탁월한 교육자이며 기독교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교단의 중심적인 목회자는 아니지만 그는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왜 기독교여야 하는지, 기독교가 주는 능력의 본질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것을 제대로 누리면서 한 세상을 두려움 없이 아름답게 살다 갈 수 있는지에 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뇌하고 증거하다 간 사람이다.
이 책은 그의 신앙과 삶을 대변하는 중요한 글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그가 주필主筆로 있던 잡지 <성서조선聖書朝鮮>에 실린 것들이다. 각 글의 끝에는 발표된 날짜와 제호를 밝혀 두었다. 원전의 맛을 살리기 위해 본문의 성경 인용은 가급적 그가 사용한 그대로 옮겼으며, 한자나 옛말의 경우 가급적 원문 그대로 남겨두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자를 추가하거나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우선 기독교에 관해 논한 글들을 ‘참기독교’라는 주제로 모았으며, 다음으로는 김교신의 삶과 신앙의 궤적에 대한 글들을, 끝으로 그가 ‘민족과 신앙’이란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였는지 보여주는 글들을 모았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의 신앙과 삶의 치열한 고뇌의 진정성과 그가 증거한 복음의 능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1. ‘참기독교’
이 장에 실린 글들에서 김교신은 한국 기독교가 처한 문제들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통해 김교신은 ‘생명 없는 형식의 껍질’과 ‘세속주의’의 양극단에서 방황하는 기독교인들을 향해 “불신자에게 회개를 촉구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회개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또 기복신앙에서 비롯한 신기한 술수를 기독교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심각한 오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참기독교인이란 허위의 평안 중에 안심하기보다는 불안 속에서 수척해질 수 있는 자이며, 마비된 채로 덧없이 살기보다는 각성 중에 깨어 고민하며 깨어 있는 자여야 한다. 또 늘 역사에 책임을 지고 사는 자이며, 평화와 정의, 자유의 삶을 창조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는 자이다. 가장 어두운 시대의 한복판에서도 머리를 들고 전진할 수 있는 자이며, ‘세상에서 망하게 되면 안심하고 망할 수 있는 자’이다.
2. 삶과 신앙
유교의 수신修身과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를 비교하며 고뇌하는 정황,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와의 만남, 무교회주의의 본질에 대한 천착 등 김교신의 신앙과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다. 특히 무교회주의의 본질적, 보편적 정신과 일본적 형식을 준별하고 그것을 조선 기독교인으로서 주체적으로 계승하고자 한 그의 신앙과 사상의 치열한 주체성을 읽어낼 수 있다,
3. 신앙과 민족
이 장에서는 조선의 정신적인 전통을 기독교를 매개로 하여 창조적으로 계승하고자 한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성서조선> 창간사’와 ‘<성서조선>의 해解’에는 그의 역사관과 맞물린 신앙관의 핵심이 잘 드러나며, <조선지리소고>에서는 지리학을 공부한 그의 한반도에 대한 자연지리적, 인문지리적 이해와 지정학적 위치를 토대로 짚어낸 우리 민족과 문화의 미래상이 돋보인다.
그는 서구 종교인 기독교를 ‘전통에서의 탈출과 배제를 위한 매개’로서가 아니라 전통을 내재적으로 초극하는 매개로 파악했다. 기독교는 그에게 주체적인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는 힘이었다. 또 ‘약자의 자존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하심을 바라며 그것을 역사 속에서 형상화하고 증거하도록 조선의 역사를 변화시켜 가는 창조적 역사 형성의 힘이었다.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도 매순간 주어진 상황을 뚫고 새 역사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무소불위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한상동, 여주동행如主同行의 삶을 살다가신 선생님
한국 교회의 역사에는 이와 같은 교회의 근본적인 영역에서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일상에서 하나님을 사랑한 분들. 그분들은 말로 이것을 가르쳤고, 생활로 보여 주었고, 피로써 그들의 가르침을 확정했다. 그렇게 해서 한국 교회의 독특한 영성이 형성되었다. 한상동 목사도 이러한 한국 교회의 선생님들 가운데 한 분이다. 그분은 세상 끝 날까지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시고 그렇게 살다 가셨다. 우리는 그를 말씀의 사람, 기도의 사람, 은혜의 사람, 성령의 사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믿음의 수호자,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책에는 감옥의 냄새가 있고 피의 냄새가 있으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경험하는 희열이 있다. 복음은 사람들 앞에 능력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렇게 도전을 받는 지금, 한국 교회는 그들이 가진 영성을 늘 잃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명을 띤 한국 교회를 위하여 이 책이 한국 교회 영성의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 김형규 (우간다 쿠미대학교 신학대학장)
<믿음의 유산> 시리즈 특징
- 전국 각 학교와 박물관, 개인 소장 자료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역사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원전을 발굴하였다.
- 옛 글맛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한자와 옛말을 풀어 주었다.
- 한글로 출간될 뿐 아니라 영문으로도 동시 출간하여 세계에 한국 기독교를 널리 전파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 박사
김치선 목사의 원전을 맛보다!
김치선 목사는?
‘한국의 예레미야’로 불린 고봉高峰 김치선(1899-1968)은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목사요, 신학자요, 교육자였다. ‘한국의 예레미야’라는 이 한마디는 그의 생애와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준다. 이는 그가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던 ‘애국자’요, 이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기도의 사람’임을 드러낸다.
김치선은 장로교회 제1세대 신학자로서 한국 교회와 신학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일본을 거쳐 미국에서 유학하며 우리나라 최초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그 후 일본과 한국에서 활동했다. 고베중앙교회, 신주쿠중앙교회, 도쿄 메구로교회, 남대문교회, 창동교회, 청파중앙교회 등에서 목회했으며, 안양대학교의 전신인 대한신학교를 설립했다. 아울러 기도와 전도운동을 통해 한국 교회의 재건과 쇄신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해방 후 그는 전도운동 및 구령救靈운동을 통하여 한국 교회의 재건을 추진했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민족 복음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자유주의 혹은 진보주의 신학으로부터 한국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노력했다.
한국의 예레미야
김치선의 신앙과 목회 활동은 영혼을 향한 뜨거운 열정 그 자체였다. 애국애족의 마음은 그의 신앙 속에 살아 있는 애주愛主에서 비롯했다. ‘눈물의 선지자’, ‘한국의 예레미야’ 김치선의 민족을 향한 사랑과 열정은, 1944년 남대문교회에 부임하여 교회를 중심으로 전개한 기도와 회개, 그리고 전도운동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해방 후 혼란한 정국과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이 민족이 살길은 오직 기도, 회개 그리고 전도뿐이라고 여겼다. 이를 위해 그는 구체적으로 300만 구령운동을 조직화하였다. 해방 당시 기독교 인구가 30만 정도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그가 펼친 300만 구령운동은 이 땅의 복음화에 쏟은 그의 열정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다.
책의 구성
이 책은 김치선의 신앙과 삶을 대변해 주는 설교문, 각종 신앙 잡지 연재글 그리고 그의 친필 설교 등을 모아 크게 네 가지 주제로 엮었다.
1부 “신앙과 민족”에는 김치선의 민족 사랑을 보여 주는 글을 모았다. 김치선은 민족의 현실과 복음의 역할 그리고 기독교 지도자들의 역할에 대하여 종종 이야기했다. 그는 어렵고 혼란스러운 민족의 현실 앞에서 기독교 지도자들의 눈물의 기도가 민족을 구하는 가장 귀하고 값진 일임을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다.
2부는 신학자 김치선의 신학을 보여 주는 글을 모아 “복음의 진수와 신학”이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여기서는 복음, 신학, 신조, 하나님, 교회라는 주제를 포함한 ‘기독교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그의 입장을 살펴보고자 했다.
3부는 1944년 발간된 《기독인의 초석》과 1960년대 발행된 <크리스챤 봉화>에 실린 글들을 중심으로 당시 기독교인들의 삶에 대한 그의 입장을 담아 보았다.
4부에는 구약학자인 김치선의 성경 이해를 보여 주는 글을 모았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신학교에서 구약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치선의 구약 강의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그 가치가 적지 않다. 이 책에서는 각 권 해석의 총론 부분을 담아 대략적인 의미를 맛보고자 했다.
왜 다시 김치선인가?
김치선 박사는 그가 살아온 발자취가 갖는 중요성에 비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고, 심지어 그 역할이 무시되기도 했다. 이런 차에 KIATS(한국고등신학연구원)는 <한국 기독교 지도자 강단설교> 시리즈의 열 번째 책으로 그의 설교와 믿음의 글들을 엮게 되었다. 이번 출간은 김치선 박사와 직접 연관이 있는 교단이나 신학교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에도 큰 의미가 있다. 눈물로 기도하고 전국을 돌면서 전도해 온 그의 열정 속에서 우리는 민족과 교회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가 한국 최초의 구약학 박사로 성경 강해와 해석에 주춧돌을 놓았을 뿐만 아니라, 신학적 가르침을 현장에서 실천해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복음주의적 투철함과 현장에 대한 그의 열정은 오늘날 기독교인, 특히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강한 도전을 준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민족과 교회를 가슴에 품고 울다 간 신학자요, 애국자인 목회자가 있었음을 알고 그의 정신이 계승되는 통로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1899년 10월 6일함경남도 함흥읍 서호리에서 김영준과 최현숙의 장남으로 출생.
1916년캐나다 선교사 영재형Luther L. Young의 양자가 됨.
1919년 2월3․1운동 당시 학생 대표로 활동하다 검거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
1922년 3월함흥 영생고등학교 졸업, 서울 연희전문학교 입학.
1925년 7월 18일이홍순李洪順과 결혼.
1927년 3월 17일서울 연희전문학교 졸업, 평양신학교 입학.
1928년일본으로 건너가 영재형 목사와 선교 활동 시작. 일본 고베중앙신학교神戶中央神學校 입학.
1930년 2월 23일고베중앙신학교 졸업.
1931-1933년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수학.
1934-1935년미국 텍사스 소재 댈러스신학교 수학.
1936-1937년 8월귀국 후 고향인 함흥읍 서호리에서 목회 활동.
1937년 8월일본으로 건너가 고베중앙교회神戶中央敎會 설립.
1938년 3월도쿄로 이주, 신주쿠중앙교회新宿中央敎會 시무.
1939년 11월 5일신주쿠중앙교회 목사 취임.
1940년《복음의 진수》 출간. 한국어 저술과 목회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연행되어 수감.
1944년 2월신주쿠중앙교회 사임. 메구로교회目黑敎會 설립.
1944년서울 남대문교회 제6대 목사로 취임.
1946년‘300만부흥전도회’ 결성.
1949년 1월야간장로교신학원 2대 교장에 취임.
1950년 1월야간장로교신학원, 대한신학교로 교명 변경. 3대 교장에 취임.
1950년 4월장로회신학교 초대 교수로 취임.
1951년 9월장로회총회신학교 창립(현 총신대학교), 초대 교수로 임명.
1952년서울 창동교회 개척.
1952년 9월대한신학교, 문교부에서 4년제 신학교로 인가받음. 초대 교장에 취임.
1954년서울 관악산에 벧엘기도원 설립.
1961년 6월대한예수교장로회 성경장로회(현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창립총회 개최하고 초대 총회장으로 피선.
1962년서울 중앙교회(현 청파교회) 부임.
1966년뇌암 판정을 받고 수술.
1968년 2월 24일병세 악화로 소천, 관악산 벧엘기도원에 안장.
1995년안양 물왕리의 남대문교회 동산으로 이장.
도서명 | 한국 기독교 지도자 강단설교 세트(전5권) |
저자 | 김교신,김익두,이성봉,한상동,김치선,한국고등신학연구원 |
출판사 | 홍성사 |
크기 | SET |
쪽수 | |
제품구성 | 상품설명 참조 |
발행일 | 2011-01-27 |
목차 또는 책소개 | 상품설명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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