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의 전적 무능력을 인정할 때, 그분의 도움이 시작된다.
나의 무력함을 고백하면 하늘의 능력이 임한다!! 당신에게 닥친 문제를 당신의 힘으로 극복하려고 결심하고 발버둥 치는 싸움을 하고 있는가? 무의미한 당신의 노력과 분투를 중단하고 주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당신의 무력함을 고백하라!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실 것이고 당신의 영혼이 살아날 것이다. 당신이 비워놓은 그 자리에 그분이 와서 일하실 것이고, 당신의 전적 무능력을 인정한 그 자리에 하늘의 능력이 임할 것이다. 주님이 당신에게 요구하시는 단 한 가지는 어린아이처럼 믿고 의지하면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하게 만드는 힘과 하나님의 일을 확신 가운데 해나갈 힘은 바로 ‘기도’에 있다. - 본문 중에서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_ 렘 29:13
>>본문 중에서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는 것을 단지 연약함이라고 간주한다. 시간이 없고 다른 온갖 것에 신경을 쓰느라 기도하지 못한다고 합리화해버리면 기도하지 않는 것이 큰 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는 기도하지 않는 것을 진정 큰 죄로 여기겠다고 마음먹어야 한다. _p 15
당신이 지금 ‘기도하지 않는 삶’을 당신의 힘으로 극복하려고 결심하고 발버둥치며 노력하는 싸움을 하고 있다면, 당신의 노력과 분투를 중단하고 주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당신의 무력함을 고백하라.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실 것이고, 당신의 영혼이 살아날 것이다. _p 38 “내가 너의 다른 모든 죄를 깨끗케 할 수 있듯이 너를 ‘기도하지 않는 죄’에서 건져낼 수 있다. 너는 이제 네 힘으로 승리를 얻으려는 노력을 중단하기만 하면 된다. 내 앞에서 머리를 숙여라. 네 자신이 아무리 비참하다고 느낄지라도 너는 내 앞에서 잠잠하라. 그리고 내가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줄 거라고 믿어라!” _p 42
기도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교제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그런 교제를 지속하지도 못하다면, 자신이 육신적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 된다.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증거 중 하나이다. _p 6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 신(神)의 강력한 두 힘에 대항하여 이길 수 있도록 십자가와 성령을 허락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십자가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며 항상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한다. _p 194
>>편집자의 글 냉랭한 내 심령의 제단에 뜨거운 기도의 불을 붙인다!
한두 번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얼마나 불편하고 불안한가? 집을 나섰는데 깜빡하고 두고 나온 것이 생각나면, 황급히 다시 돌아가 챙겨 나온다. 왜 그런가? 왜 한시도 참기가 힘든가? 왜냐하면 그것이 나와 타인의 의사소통과 정보 교류의 창(窓)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대인관계 소통의 창 노릇을 하는 ‘휴대전화’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는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의 중요한 창인 ‘기도’는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사람과 소통하는 도구인 휴대전화는 24시간 끼고 살면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는 너무 홀대하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과의 소통의 문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삼상 12:23). 또 바울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라고 명했다. 우리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서 주님(주인님)을 섬기려면 항상 주님과의 교신(交信)이 열려 있어야 한다. 나는 묻고 주님은 응답하시는 교제와 교통이 활발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축도 중에도 ‘성령의 교통’을 구하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과 교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 무엇인가? 바로 기도가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기도를 ‘소원 성취’의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해야 할 소원이 생각날 때만, 내 삶이 한계 상황에 놓일 때만 벽장 깊이 방치해둔 기도의 연장을 꺼내 먼지를 털어내고 써먹으려고 한다. 그러나 워낙 오랫동안 방치해둔 터라 이 신령한 통신장비가 제대로 작동하지를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목적과 효용을 우선시하는 인간관계의 비정함에 얼마나 지치는가? 나에게서 소기의 목적만 성취한 다음에는 헌신짝 버리듯이 차버리는 친구, 연인, 직장 동료, 교우(敎友) 들에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는가? 그런데 이런 인간관계의 비정함을 아는 우리가 하나님과도 목적과 효용을 조건으로 내걸고 관계를 유지하려고만 하는 것은 또 얼마나 자가당착인가? 일찍이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렀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_합 3:17-19
나의 상황이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아무 조건이나 목적 없이 하나님 자체가 좋고, 그분과 교제하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그래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시 42:1) 하나님을 갈망하면서 그분과의 교제에 탐닉하는 것이 바로 기도이다.
기도의 사람, 성령의 사람 이렇게 오직 타는 목마름으로 하나님을 사모하여 기도를 쉬는 죄를 평생 범하지 않으려 힘써 기도한 자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앤드류 머레이이다. 이 책은 시종일관 ‘기도를 쉬는 죄’의 문제를 다룬다. 어떻게 하면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고 능력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지를 소개한다.
앤드류 머레이는 기도의 능력을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이다. 1860년 자신이 시무하는 남아프리카의 교회에서 불꽃기도의 부흥을 체험했다. 폭포수 같은 기도와 더불어 성령충만이 온 회중에게 임하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남아프리카 교회들이 부흥의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런 대부흥으로 말미암아 앤드류 머레이는 더욱 기도에 매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기도 영성(靈性)이 깊어질수록 더욱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그가 서는 자리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으며, 그로 인해 많은 교회들이 성령충만을 더욱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다. 기도의 사람이 서는 곳에 기도부흥이 일어났으며, 성령의 사람이 서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 또한 그는 성령으로 인한 성화(聖化)를 강조하여 중생 이후에는 거룩한 생활에 힘써야 할 것을 역설했다.
그의 기도 영성과 성령충만 중심의 가르침은 남아프리카 교회들을 더 뜨겁게 달구었으며 영국에까지 큰 영적 영향력을 미쳤다. 그의 가르침이 영국의 영적 각성에 영향을 끼쳤으며 여기에서 발단한 기도운동이 1904년 웨일즈 부흥의 모판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앤드류 머레이, 그의 심장에는 기도의 불, 성령의 불덩이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서는 곳마다 심령부흥이 일어났다. 200여 권이 넘는 그의 저서 대부분이 기도와 성령의 임재, 성령의 거룩하게 하는 사역에 관한 것이다. 오늘 그가 쓴 기도의 역작(力作)인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 그의 가슴에 붙었던 기도의 불이 옮겨 붙을 것이다. 오늘, 기도의 불이 사위어진 당신 심령의 제단에 기도 불이 활활 타오르게 될 것이다! - 규장 편집국장 김응국 목사
“내 자아가 펄펄 살아 있으면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실 곳이 없다!” 당신의 자아가 죽은 곳에서 주님이 일을 시작하신다 당신의 자아를 완전히 포기하라! 예수님이 당신 안에서 주님의 삶을 사실 것이다
자아 (自我) 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마음을 다해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날마다 자신을 주께 드려서 주님이 우리의 전부가 되시게 하는 것이다. “내게는 부인할 자아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없다. 그 누구도 “나는 자아를 부인 (否認) 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하려는 사람은 매 시간,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끊임없이 자아를 부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예수님이 죽음과 무덤까지 낮아지셨다는 것을 기억하라.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 자아의 죽음에 이를 때,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모든 잘못의 뿌리가 바로 ‘자아’라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 제가 바로 이런 존재입니다”라고 주께 고백하라. 그런 다음 그리스도의 생명이 당신의 생명이 될 수 있음을 확실히 믿고 당신 삶의 통제권을 완전히 주님께 넘겨드려라.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그분의 삶을 사셔야 한다!
- 본문 중에서 -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 고린도후서 5장 15절 -
그리스도를 인도하셨듯이 우리를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님께 진정으로 복종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복종과 자기부인을 본받으라는 성령님의 명령을 온전히 받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경우처럼 우리에게도 십자가의 길은 영광에 이르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길이다. 모든 것이 이미 예수님 안에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단지 손을 내밀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항상 준비하고 계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은 나를 위한 존재이시다’라는 굳센 믿음과 확신으로 주님을 붙잡는 것이다. 예수님을 붙잡으면 주님이 참 믿음의 근원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그 말씀이 굳센 확신으로 발전할 때까지 소중히 간직하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토대이다.
주님의 기도 무릎학교에는 기도의 무한한 능력과 비밀이 있다! 기도의 모든 것이 있는 무릎학교에서 주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기도를 배우라!
앤드류 머레이 디바인 북스 6
주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기도를 가르치기 원하신다.
주님과 함께하는 무릎학교에서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된 기도를 배우는 것이다. 기도는 참으로 단순하여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도 할 수 있지만 또한 동시에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고 거룩한 일이기도 하다. 기도는 보이지 않는 이,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기도는 영원한 세계의 능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기도는 참된 신앙의 본질 그 자체이며 모든 축복의 통로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우리가 제대로 기도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기도의 능력은 잃어버린 채 형식적인 기도에만 태평하게 머물고 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아 많은 것을 이루는 참된 기도, 하늘 문을 활짝 여는 참된 기도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감사하게도 주님은 이런 우리를 위해 기도를 가르치는 무릎학교를 여시고, 기도의 능력을 갖기를 특별히 소망하는 주님의 자녀들을 훈련시키신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하는 무릎학교에 들어가자! “주여,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그것이니 기도를 가르쳐주소서!”라고 간청하며 주님의 무릎학교에 입학하자! - 본문 중에서
[서문]
예수님은 당신에게 능력의 기도를 가르쳐주시기를 갈망하신다
그리스도를 닮은 삶의 모든 특징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끊임없이 전념하고 계신 전능한 중보 기도의 사역에 동참하며 그분을 따르는 것보다 더 높고 영광스러운 것은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더 온전하게 거할수록, 영적으로 성장하여 그리스도를 더 많이 닮을수록 그리스도의 ‘제사장의 삶’이 우리 안에서 더욱 강력하게 역사할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의 삶과 같은 삶, 곧 사람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삶이 될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기도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능력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기도를 단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한, 그것의 본래 위치와 능력을 온전히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의 가장 고귀한 일부, 즉 다른 모든 일의 뿌리와 힘이 되는 가장 높은 사명으로 간주하는 법을 배울 때 기도라는 과목보다 더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열렬히 연습해야 할 과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책을 사용하시어 자녀들을 위해 비축하여 두신 기도의 능력과 영향력의 깜짝 놀랄 만한 중요성을 더욱 명확하게 깨우쳐주시기를 기도드린다. 하나님은 모든 믿음의 기도를 듣기 위해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주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고자 하신다. 그리고 자신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고 확고히 믿는 자녀를 위해 하나님께서 어떤 경이로운 역사를 일으켜주실지 온전히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신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역사하는 힘이 큰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런 이들에게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다. 그 메시지란 바로, 복되신 예수님이 그런 능력의 기도에 대해 가르치기를 갈망하시면서 그들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중보 기도의 거룩한 사역을 위해 따로 구별된 이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어 이 중보 기도의 거룩한 사역을 올바로 깨닫게 해주시기를 바란다. 우리의 기도가 이 세상과 하나님나라에 실로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넓고 강한 심령을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또한 우리를 위한 기도를 드리기 위해 영원히 살아 계신 예수님, 우리를 위한 기도를 드리기 위해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 우리의 기도의 삶의 결과를 보증해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 ‘과연 우리가 이런 소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모든 두려움과 염려가 말끔히 사라지게 되기를 소망한다. _앤드류 머레이
우리는 자아의 종말과 죽음 바로 그곳에 있는 겸손을 구해야 한다. 예수님에게서 가장 본받을 것, 가장 절실히 구할 것은 겸손이다!
만일 겸손이 예수님 생애의 으뜸가는,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성품이며 예수님의 속죄 사역의 비밀이라면 영적 생명의 건강과 힘은 우리가 이 성품을 삶의 첫 번째 자리에 놓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에 따라 전적으로 좌우될 것이다. 우리는 겸손을 예수님에게서 가장 본받을 것, 예수님에게서 가장 경탄할 것, 예수님에게 가장 절실히 구할 것,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하고라도 반드시 얻어야 할 것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예를 구하기 위해 인간의 모든 명예를 포기하는 겸손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이 되도록 우리의 자아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겸손, 우리의 자아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겸손을 구해야 한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이 높임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겸손을 우리의 주된 기쁨으로 추구하지 않는 한,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그것을 소유하리라 확고히 다짐하지 않는 한, 세상을 정복하는 신앙을 소유하리라는 소망은 그저 소원해질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서문]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겸손하게 만드는 것
우리를 겸손으로 몰고 가는 세 가지 주된 동기가 있다. 겸손은 피조물로서의 인간, 죄인으로서의 인간, 신자로서의 인간에게 적합한 것이다.
세 동기 가운데 첫 번째는 천군 천사들, 타락하지 않은 인간, 인자(人子)로서의 예수님 안에서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타락한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호소하며 한 가지 유일한 길을 제시한다. 우리는 그 길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합당한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우리를 겸손으로 몰고 가는 세 번째 동기는 은혜의 오묘함이다. 이 은혜의 오묘함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의 압도적인 광대함에 온전히 잠길 때 겸손이 영원한 축복과 예배의 절정이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런데 교회의 통상적인 가르침에 대해 생각해볼 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세 동기 가운데 유독 두 번째, 즉 ‘죄인으로서의 인간’이라는 관점만 전면에 내세우는 것 같다. 그래서 심지어 혹자들은 극단으로 치우쳐, 인간이 정말로 겸손의 상태에 지속적으로 머물려면 계속 일상의 죄를 지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일상적인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의 힘이 겸손의 비밀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날 수많은 신자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모든 것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고 복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분명한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숱한 실패와 낭패를 당하고 있다.
오늘의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겸손하게 만드는 것이 일상의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죄가 아무리 클지라도 하나님 은혜의 이끌림을 받아 놀라운 영광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 창조주로서의 하나님, 구속자로서의 하나님께 몰두하게 된 영혼은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낮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죄인’으로서의 우리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그 대신 남자와 여자, 즉 ‘일반적 인간’으로서 우리에게 적합한 겸손에 거의 전적으로 주의를 집중하였다.
거기에는 한 가지 이상의 이유가 있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은 우리의 그리스도교 가르침에서 겸손과 죄의 연관관계가 이미 충분하게 설명되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온전하고 풍성한 삶을 위해서는 다른 관점에서 겸손을 부각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장 높은 성취
우리는 예수님을 겸손의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의 뿌리가 되었던 원칙들을 분명히 깨달을 필요가 있을 것이며, 우리가 예수님과 어떤 공통된 기반 위에 서 있고 예수님과 어떤 공통된 기반 위에 서야만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겸손해지기를 원한다면, 겸손해지기를 원하되 단지 하나님 앞에서뿐 아니라 인간들을 향해서도 진정으로 겸손해지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겸손을 우리 삶의 기쁨으로 삼기를 진실로 원한다면, 겸손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범하는 죄로 인한 수치의 표시로만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겸손’이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죄와 따로 떼어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천국과 예수님의 아름다움과 복됨을 지닌 중대한 요소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종의 모습을 취하심으로써 영광을 받으셨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분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 23:11)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모든 이들을 섬기고 돕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신령하고 복된 것이 없다는 축복의 진리를 가르치셨다. 자신의 지위를 잘 알고 있는 충성스러운 종은 자신의 주인이나 손님들이 바라는 것들을 충족시키는 데서 참된 기쁨을 발견할 것이다.
겸손이 일상적인 죄의 뉘우침보다 무한히 더 심오한 어떤 것임을 우리 모두 알게 될 때, 그리고 우리 모두 겸손해지는 것을 예수님께서 살아가신 삶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받아들일 때, 그것이 정말로 우리를 고결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또한 모든 이들의 종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으로서 우리 삶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높은 성취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에 따르는 독특한 한 가지 특징
나는 신앙 체험을 되짚어보거나 오늘의 교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곤 한다. 그때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에 따르는 독특한 특징으로서의 겸손을 사모하는 이들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에 그만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사실 우리는 설교를 할 때나 일상생활을 할 때, 가정과 사회에서 평범한 삶의 행위들을 할 때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특별한 교제를 나눌 때, 그리스도를 위한 일들을 감독하고 실행할 때, 우리 스스로 겸손이라는 것을 중요한 진리로 여기지 않는다는 증거들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오늘의 우리는 겸손을, 은혜가 자라는 유일한 뿌리로 여기고 있지도 않거니와 예수님과의 참된 사귐을 위한 불가결한 조건으로 여기고 있지도 않다. 이 자리에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한 가지를 고발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자칭 더욱 더 높은 거룩함을 사모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점점 더 커지는 겸손으로 거룩함을 사모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모든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나의 촉구이다. 즉, 당신 마음을 온유하게 하고 낮아지게 함으로써 당신이 온유하고 겸손한 하나님의 어린양을 따르고 있음을 입증하라는 강력한 촉구이다. _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거나 그분을 본받거나 그분의 삶을 모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인간의 삶을 사시면서 우리가 마땅히 살아가야 할 삶의 모범을 가르쳐주셨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 얼마든지 그리스도처럼 살아갈 수 있고 또 그렇게 살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매우 어리석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살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것은 우리의 첫 번째 의무이다. 하지만 그런 삶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그런 삶을 사시도록 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삶은 너무나 고귀하고 신성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는 그 모양을 흉내조차 낼 수 없다.
자아와 자기 자신의 노력을 포기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전능하신 주님을 붙잡아야 한다. 주님이 우리의 삶을 소유하신 이유는 자신의 삶으로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우시기 위함이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이 시작하신 일을 온전히 이루시도록 그분을 철저히 의지하라. - 본문 중에서
“당신도 성령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다!”
스스로의 노력을 포기하라, 내가 포기할 때 주님이 채우신다! 자아의 고집을 꺾고 낮아진 마음을 드려 오직 주님만 의지하라
“순종 이외에 예수제자가 되는 방법은 없다!” 하나님은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결코 자신의 백성으로 택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당신에게 큰 성과물을 요구하신 적이 없다, 오직 당신의 순종만을 요구하신다
앤드류 머레이 디바인 북스 성령에 속한 사람만이 ‘신령하고 거룩한’(Divine) 글을 쓸 수 있다. 영에 감동을 주는 글은 자신이 직접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사람, 기도의 낙타무릎을 가진 자만이 쓸 수 있다. 현대의 많은 영성작가들은 성령과 무릎이 부재한 상태로 글을 쓰다보니 영혼의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하는 표피적인 글만 양산한다. 그러나 기도의 불, 성령의 불덩이를 간직한 앤드류 머레이가 서는 곳에는 기도부흥, 성령충만의 역사가 나타났다. 이에 규장은 우리의 냉랭한 심령에 하늘 불쏘시개가 될 그의 책들만을 정선하여 ‘앤드류 머레이 디바인 북스’로 내놓는다. 이 책들이 우리 가슴에 하나님의 거룩한(Divine) 불을 던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땅에 있을 때 순종의 학교에서 배우셨다. 그리고 지금은 여기 이 땅에 있는 제자들에게 순종을 가르치신다.
불순종이 사망을 위해 통치하는 이 세상에서 순종을 회복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손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삶에서와 같이 우리 삶에서도, 우리 안에서도 순종을 유지시켜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치시고 우리 안에 순종을 일으키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구원의 근원이 되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순종을 통한 구원의 근원으로서 지금 자신에게 순종하는 이들을 구원하신다. 구원의 본질이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순종하시는 이’로서 자신에게 ‘순종하는 이들’인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땅에서 고난 받던 과거이든지 하늘의 영광 가운데 있는 지금이든지 순종에 고정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순종을 배우셨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순종의 비밀을 설명하심으로써 지금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치신다.
- 본문 중에서
▒ 서문 순종학교 학생이 주목해야 할 교훈과 서약
은혜로우신 아버지께서 교회와 세상의 장래를 짊어지고 있는 젊은 남녀들을 가르치고 굳건하게 하는 일에 기쁘게 사용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 책을 내놓는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풍성하게 축복해주시기를! 어떤 연합집회가 끝나거나 혹 심지어 어떤 책을 다 쓰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몰두하고 있던 진리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하게 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지금의 내 느낌이 그렇다. 아무래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의 영적 특질, 불가결한 필요성, 신령하고도 실제적인 가능성, 상상도 하지 못할 축복 등에 대하여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특별히 나의 마음에 와닿는 동시에, 모든 독자들이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순종 안에서 성장하면서 마땅히 배워야 할 주된 교훈으로 주목하기를 바라는 주안점 몇 가지를 간략히 요약하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모든 자녀들이 충심으로 순종하기를 바라신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그 자녀들이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새 언약의 약속 안에, 그리고 아들과 성령이라는 선물 안에 풍성하고 충족한 것들을 공급해주셨다.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신자들 안에 거하시며 날마다 역사하실 때 그분이 공급해주신 것들을 누릴 수 있고 또 그 약속들이 성취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러한 삶으로의 들어감 자체는 절대적인 순종의 서약을 요구한다. 새로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뜻에 일치하는 것들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고, 그런 모습이 될 뿐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행하지 않고, 되지 않는 데 자신의 존재 전체를 바치기로 동의한다. 하나님 뜻에 일치하는 것들은 진리이므로, 그것들에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꼭 필요하다. 성령님께서는 찬연함과 신령한 능력을 정말로 분명하고 또렷하게 보여주셔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고자 하시는 모든 것들을 우리가 온전히 받아들일 때까지 결코 쉬지 못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빛으로, 우리에 관한 하나님 사랑의 전능하신 뜻을 보여주시기를 기도드린다. 그러한 하늘의 비춤에 순종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앤드류 머레이 (Andrew Murray, 1828~1917)는 자신의 무능력을 절감하고 자신을 낮춤으로써 그리스도의 능력을 겸손히 의지한 믿음의 사람이자 기도의 사람이다. 그는 1860년 자신이 시무하는 남아프리카의 교회에서 불꽃기도 부흥을 체험했는데, 폭포수 같은 기도와 더불어 성령충만이 온 회중에게 임하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기도의 사람이 서는 곳에 기도의 부흥이 일어났으며, 믿음의 사람이 서는 곳에 믿음의 역사가 나타났다. 그의 기도 영성과 성령충만 중심의 가르침은 남아프리카 교회들을 더 뜨겁게 달구었으며 영국의 기도운동으로 점화되어 1904년 웨일즈 부흥의 모판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는 기도의 부흥과 더불어 겸손한 삶을 자주 강조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마음과 태도’를 뜻하는 ‘겸손’을 ‘죄책감 때문에 자세를 낮추는 태도의 변화’ 정도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오직 은혜로 말미암은 자아의 죽음과 자기부인의 결과로서, 즉 은혜에 의한 구원의 증표와 열매라는 측면에서 겸손을 부각시킨다. 또한 겸손이란 은혜의 열매가 자라는 유일한 뿌리이며, 예수님과의 참된 사귐을 위한 불가결의 조건이라고 각인시킨다. 그리하여 스스로 종의 모습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겸손을 연습시킨다. 이 책의 가르침을 따라 날마다 겸손에 익숙해질 때, 우리는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신령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나를 낮추고 낮출 때마다 더 높이 드러나는 주님의 영광을 체험할 것이다. 앤드류 머레이, 그는 항상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한 문제들을 날카롭게 인식했다. 분명한 목적의식과 깊은 열정으로 200여 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으며, 100년이라는 세월의 풍화작용에도 전혀 퇴색되지 않고, 식어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심령에 하늘 불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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