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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가장 독창적인 기독교 사상가 자크 엘륄과 함께 읽는 성경-엘륄의 아모스서, 야고보서 강해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약하고 연약한 자들을 유기하고, 젊은이를 소외시키며, 다음 세대가 살 만한 미래를 부정하고, 환경 파괴의 물결에 속수무책인 현실을 기독교는 정당화할 수 있는가? 엘륄은 우리 가운데 기독교가 있다는 것이 별다른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진단한다. 아모스 시대에는 상당한 경제적 확장과 군사적 성공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된 반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난해졌다. 부자들이 기독교 공동체에 들어오게 되자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에 고민이 깊어졌다. “가난한 사람들의 존재는 숨겨져 있는 깊은 악, 곧 우리의 믿음과 순종과 사랑이 없음을 드러낸다”고 보는 엘륄은 우리 시대의 심각한 문제들을 보여주고 있는 아모스서와 야고보서를 통해 기독교적 삶의 원칙과 사회의 관습 사이의 간극을 폭로하는 한편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가치관에 순응하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자유와 사랑으로 다가가는 대안적 길을 제시한다.
▒ 출판사 리뷰
달아날 곳 없는 글로벌 시대, 세속사회의 가치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기독교적인 것’에 관한 숙고- 자크 엘륄의 아모스서·야고보서 강해
《부와 가난에 관하여》는 《자유, 사랑, 능력에 관하여》가 출간된 지 4년 후에 나왔다. 이 책을 편집한 빌렘 반더버그는 나토(NATO) 박사 후 과정 펠로우로 있던 1973년과 1978년 사이 거의 5년 동안 자크 엘륄이 인도하는 야고보서 성경 모임에 참석했고, 이 책의 2부에 해당하는 내용은 그 당시 녹음했던 것을 정리한 것이다. 아모스 강해는 자크 엘륄이 페사크(Pessac)의 지역 교회에서 메리냐크 교회 성도들과 함께한 성경 연구를 녹음해 정리한 것이다. 애정 어린 제자의 수고로 자크 엘륄의 저작을 완성하는 중요한 작품이 나오게 된 것이다.
엘륄은 아모스서와 야고보서를 통해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약하고 연약한 자들을 유기하고, 젊은이를 소외시키며, 다음 세대가 살 만한 미래를 부정하고, 환경 파괴의 물결에 속수무책인 현실을 기독교는 정당화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존재는 숨겨져 있는 깊은 악, 곧 우리의 믿음과 순종과 사랑이 없음을 드러낸다”고 보는 엘륄은 기독교적 삶의 원칙과 사회의 관습 사이의 간극을 폭로하는 한편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가치관에 순응하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자유와 사랑으로 다가가는 대안적 길을 모색한다. 이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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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번째 자끄엘륄총서
엘륄, 40년 전도서 묵상에서 참된 지혜를 만나다전도서 묵상과 인간의 존재와 역사에 관한 성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현대의 질문과 “어떤 유익이 있는가?”라는 전도서의 질문 간의 모순은 ‘무엇에’를 ‘누구에게’로 바꾸면 해소된다. 누구에게 그게 소용이 있는가? 이는 전도서의 본문들이 주는 교훈이다. 우선적인 관심이 ‘누구’라는 인간에게 있다. ‘누구’라는 인격, 행위자, 살아있는 존재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전도서는 ‘무엇’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것은 중립적인 것으로 사물이고 기구이고 소유물이고 수단으로서 인간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인식하는 대상이다. 전도서는 우리의 질문들의 중심을 어긋나게 한다. 왜냐하면 깊은 성찰을 통해서 전도자가 한 것이 바로 이 질문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의 전환을 통해서 인간을 향한 전도서의 메시지가 임한다. 네가 너 자신을 창조주로 착각할 때마다, 너는 파괴하고 파멸시키는 존재가 된다. 반면에 인간이 침묵과 신중함과 겸손 속에서 은밀히 일하는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서 행한 일은 다 긍정적이고 유익하고 활력을 준다. 인간이 자신을 창조주로 착각하여 권력으로 행한 일은 다 공허감을 불러일으키는 허무한 일이다.
여기서 전도자는 가차 없이 급진적으로 선언한다.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헛된 것이고 연기와 안개와 구름 같은 것이다. 덧없고 유사(流砂)와 같은 우리의 삶에서 유일하게 안정적이고 확고한 것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라”는 말씀이 존재한다. 모든 인간의 존재는 이 말씀에 귀착된다. 다시 말해서 이 말씀에서 떠나있는 모든 사람은 아무런 존재도 아니다. 그는 아벨이다. 여기에 더도 없고 덜도 없고 절충도 없다.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인간에게 진리와 실재를 부여하는 것은, 돌연히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이다. 그것이 인간의 전부이다.
할 말은 다 하였다.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다”
<전도서 12:13 새번역>
자끄 엘륄이 말하는 이 책의 저술 동기오늘날 전도서에 관해 또 하나의 책을 쓴다는 것은 유별나게 헛된 욕심을 가진 사람이거나 극히 무분별한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이리라! 참고도서 목록만 해도 수많은 장이 할애되어야 하고, 하나같이 훌륭한 학자들이 쓴 주석들의 목록만 해도 수십 장에 이르는데 말이다. 나는 학자도 주석가도 해석학자도 신학자도 아니다. 내가 여기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단지 전도서를 반세기가 넘게 읽고 묵상하며 기도해 왔다는 사실뿐이다. 내가 그토록 깊이 파고들고 또 그만큼 수확을 얻었던 성서 텍스트는 아마도 전도서가 유일할 것이다. 전도서만큼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건네준 책은 없었다. 여기서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대화 내용이라고 해두자. 그리고 이 책의 전개 방식은 내가 다른 저서들에서 간혹 취하곤 했던 대학의 학문적인 방식과는 다르다는 점을 독자 여러분에게 미리 예고한다.
대학의 학문적인 방식은 주제에 관한 참고문헌을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가능한 모든 자료들을 다 읽고, 분류 카드에 기록하고, 하나의 기본 구도를 수립한다. 그리고 다른 저자들의 연구 결과들을 확장하거나 또는 반박하는 내용으로 편집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이 책의 전개방식은 정반대가 된다.
나는 미리 다른 관계서적들을 읽어서 예비지식을 습득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전도서의 텍스트와 일대일로 마주하고 싶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았지만 그것을 읽는데 나는 아주 서툴렀다. 그래서 도움도 받고 점검도 받을 겸해서 9개의 번역판을 보았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텍스트를 써내려갔다. 내가 쓴 것이 외적인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걸 쓴 것은 이미 기존에 습득한 문화와 지식을 가진 개인으로서의 나 자신이지 어떤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코헬레트에 관한 몇 가지 논문들을 읽었었다. 『신앙과 삶』(Foi et Vie)에 실린 비셔의 논문, “전도서와 몽테뉴”는 물론이고 페데르센, 루티, 폰 라드의 글들을 보았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설명하겠지만, 반세기 전부터 전도서에 관해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내게 있었다. 그래서 30년 전에는 델리취의 글을 요약하기도 했었다.
그러므로 나의 입장은 중립적일 수 없고 백지상태에서 출발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점점 써야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나는 전도서에 관해서 다른 아무 것도 읽지 않도록 스스로 자제했다. 깊이 숙고하여 나만의 텍스트를 완성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눈에 띄는 모든 글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독서 중에 접한 책들 가운데 포드샤르(Podechard), 스타인만(Steiann), 바룩(Barucq), 라우하(Lauha) 등의 책들이 좀 무덤덤하게 느껴졌다면, 리스(Lys)의 책과 마이요(Maillot)의 책은 나로 하여금 모든 걸 포기하게 할 뻔했다. 그 두 책들은 각각의 장르에서 완벽하게 보였다. 리스는 학문과 주석학적인 엄정성과 완결성과 진실성의 모범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서문에서 모든 가설들을 검토하고, 각각의 용어에 관해서 해박한 설명을 쏟아놓으면서, 텍스트를 단어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구성하였다. 마이요는 나에게 번뜩이는 예언자적인 영감과 함께 텍스트에 대한 깊은 통찰을 훌륭하게 보여 주었다.
아주 다르지만 완벽하게 서로 보완하는 그 두 권의 책들을 앞에 두고서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제 나만의 텍스트가 있다. 십여 편이 넘는 주석들을 읽었지만 나는 내가 쓴 텍스트의 한 줄도 고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나의 방식은 전도서의 말씀에도 들어맞는다고 본다. 경험과 지식을 어느 정도 가졌다면 남들의 말을 모방하지 말고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텍스트를 써가는 가운데 내가 “역사학자들과 주석학자들”의 견해를 넌지시 꺼낸다면, 그것은 보통 어디나 통용되는 사회통념들이거나 일반적인 이론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후에 읽은 훌륭한 책들에 대해서는 많은 각주들을 붙여 표시했다. 나는 그런 각주들 속에 나의 견해를 표명하여 입장을 정리했다. 이와 같이 전개해나간 것이 내가 취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서문이라고 해야 할 제목을 “후기”라고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또한 “논쟁적”이라고 한 것은 나중에 가서 몇몇 저자들을 비판한 데 따른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이 책의 한계들을 보여준다. 즉, 나는 전도서의 새로운 “주석”이나 “요점”이나 거기서 취합한 종교적 강론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한 작업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40년 동안 나는 전도서에 관한 실제적 묵상이 내가 마음속에 그리기 시작한 나의 모든 저서들 전체에 대한 적절한 결론이 될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것은 지적이고 활동적인 내 삶의 여정이 끝날 무렵에 가서야 가능할 듯했다. 전도서라는 책은 하나의 결론이지 하나의 출발점일 수는 없다. 나는 그것이 전도서의 말씀에 부합한다고 본다. 전도서의 모든 긍정이나 부정은 일을 다 겪은 후에 일종의 마침표처럼 내려진다.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결론이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는 전도서를 기점으로 해서, 또는 전도서 이후로 거기에 덧붙일 만한 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서,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 내가 집필하고자 했었던 모든 책들의 전체적인 서문이라고 한다면, 전도서는 마지막 결론에 해당할 것이다. 사실 나에게 아직 더 많이 쓸 수 있는 여력이 남아있는 것 같지 않다. 내가 마음속에 담아둔 계획을 모두 다 이룰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이 허락한다면 한두 권을 더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한두 권은 이미 저술한 책들을 보완하는데 그치고 말 것이다.
*자끄엘륄총서*1.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박동열 옮김
2. 뒤틀려진 기독교 박동열/이상민 옮김
3. 하나님이냐 돈이냐 양명수 옮김
4. 잊혀진 소망 이상민 옮김
5. 이슬람과 기독교 이상민 옮김
6. 하나님은 불의한가? 이상민 옮김
7.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김재현/신광은 옮김
8. 요나의 심판과 구원 신기호 옮김
9.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김은경 옮김
10. 무정부주의와 기독교 이창헌 옮김
11.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곽노경 옮김
12. 정치적 착각 하태환 옮김
13. 인간을 위한 혁명 하태환 옮김
14. 폭력에 맞서 이창헌 옮김
15. 선전 하태환 옮김
16.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김은경 옮김
17. 혁명의 해부 황종대 옮김
18. 의심을 거친 믿음 임형권 옮김
19.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황종대 옮김
20. 기술체계 이상민 옮김
21. 자연법의 신학적 의미 강만원 옮김
22. 마르크스 사상 안성헌 옮김
23. 무의미의 제국 하태환 옮김
24. 굴욕당한 말 박동열/이상민 옮김
25. 마르크스의 후계자 안성헌 옮김
26. 우리의 기도 김치수 옮김
27. 개인과 역사와 하나님 김치수 옮김
28. 존재의 이유 김치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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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가장 독창적인 기독교 사상가 자크 엘륄과 함께 읽는 성경-창세기 1-3장, 욥기 32-42장, 마태복음 13, 18, 20, 22, 25장, 요한복음 1:1-2, 요한계시록 요약
사회학자요 역사가이자 법학자요 기독교 사상가이기도 한 자크 엘륄, 그가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했던 녹취 원고와 프랑스 개혁교회에서 했던 일련의 강연을 모아 편집한 책. 유혹도 강제도 없이 끝내 자기의 백성을 되찾으시는 하나님의 모험과, 자유와 사랑과 무권력(non-power)에 기초하는 천국의 방식에 관한 영감 넘치는 사색.
▒ 출판사 리뷰
유혹도 강제도 없이 끝내 피조물을 되찾으시는 하나님의 모험과 천국의 방식에 관한 사색- 치밀한 본문 탐구와 근원적 사유가 빛나는 자크 엘륄의 성경 연구
이 책은 자크 엘륄이 직접 저술한 책이 아니다. 엘륄의 사상적 계승자요 ‘기술의 생태학’을 주창한 빌렘 반더버그가 1973-1978년까지 보르도 대학에서 엘륄의 지도를 받으며 NATO 박사 후 과정을 밟던 중 그가 주도하는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했고, 당시 녹음한 내용을 정리하여 《자유, 사랑, 능력에 관하여》(2010)와 그 후속작인 《부와 가난에 관하여》(2014)를 편집해 출간한 것이다. 빌렘 반더버그가 사적인 성경 공부 모임에서 녹음을 한 이유는 그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문에서 불어로 한 엘륄의 구술 내용을 읽기 쉬운 글로 옮기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으며, 말미에서 “이 책은 내가 이 궁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이해하도록 도와준 자크 엘륄을 기억하는 사랑의 수고였다”라고 적었다.
이 책의 1부와 3부가 엘륄과 함께 성경 공부한 녹취 원고이고, 2부와 4부는 자크 엘륄이 프랑스 개혁교회의 페사크-메리냐크 교구에서 행한 일련의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 1부에서는 창세기 1-3장을 통해 우리가 종교와 도덕과 마술의 신(들)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해방의 좋은 소식을 선포한다. 에덴에서 인간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자연 만물을 사랑하도록 부름 받았으며, 그렇게 창조되었음을 환기시킨다. 2부에서 엘륄은 엘리후가 등장하는 욥기 32-42장을 다루면서, 인간이 겪는 고통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 고통의 책임이 누구에게 또는 무엇에 있는지 묻는다. 그는 욥과 친구들 간의 논쟁으로 대변되는 모든 일반적 대답을 한쪽으로 제쳐놓음으로써 매우 다른 시각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겪는 혼란에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구경꾼이 아니라 끝내 우리를 찾아내고 화해시키려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케 한다. 3부에서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천국에 대한 비유’와 ‘하나님나라에 대한 비유’의 차이가 유대교 성경에 깊이 뿌리를 둔 기독교를 정의한다고 보았다. 천국의 방식은 우리 문명과 정반대로 자유와 사랑과 무권력(non-power)에 기초하는 것임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4부는 요한복음 1장 1-2절에 대한 해설로, 다시 창세기의 메시지로 돌아온다. 빌렘 반더버그가 편집한 에필로그는 엘륄의 《요한계시록 주석》을 요약한 것으로, 진정한 소망과 진정한 믿음과 진정한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에 필요한 ‘궁극적인 사랑’을 다루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자크 엘륄에 의하면,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는 결국 자기의 피조물인 인간을 찾아 관계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믿기 어려운 모험 이야기이다. 즉 하나님이 피조물을 유혹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랑으로 되찾으시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이 땅에서 굴복하지 말고 승리해야 할 이유와 근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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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번째 자끄엘륄총서현대의 인간 소외와 그리스도의 자유가장 발달된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소외의 중요한 현상이 이제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아니다. 물론 그런 착취 현상은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언제나 상존하고 부분적으로 서구사회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더 이상 확고한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인간의 적은 다른 계급에 속하는 인간이 아니고, 그 계급에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된 구조도 아니다. 인간의 적은 이름 없는 복합성을 지닌 일체의 메커니즘들이다. 그것은 ‘기술-선전-국가-행정-계획화-이데올로기-도시화-인격화’의 기술들이다. 인간은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그런 복합체들 속에 끼어있다.
자유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 소외된 인간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상황 속에서 자유의 윤리를 성찰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노예적 예속상태를 비판한 것은 그들이 살던 사회의 상황에 대한 것이었던 점과 같은 맥락이다. 오늘날 우리는 ‘소외된 인간’이라는 말을 ‘노예’라는 말과 겹쳐서 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소외된 인간’이라는 말은 ‘노예’라는 말과 결코 동일하지 않은 깊은 내용과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외와 관련지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의 의미를 성찰하고 취할 행동이 무엇인지 탐구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에 자유가 유입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내세우고 그리스도의 자유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 가운데 자유의 담지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본을 보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간이 요구하는 자유가 존재하고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언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자유의 담지자로서 세상의 구조와 체제 안에 있는 거짓 자유를 확연히 드러나게 해야 한다.
*자끄엘륄총서* 1.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박동열 옮김
2. 뒤틀려진 기독교 박동열/이상민 옮김
3. 하나님이냐 돈이냐 양명수 옮김
4. 잊혀진 소망 이상민 옮김
5. 이슬람과 기독교 이상민 옮김
6. 하나님은 불의한가? 이상민 옮김
7.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김재현/신광은 옮김
8. 요나의 심판과 구원 신기호 옮김
9.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김은경 옮김
10. 무정부주의와 기독교 이창헌 옮김
11.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곽노경 옮김
12. 정치적 착각 하태환 옮김
13. 인간을 위한 혁명 하태환 옮김
14. 폭력에 맞서 이창헌 옮김
15. 선전 하태환 옮김
16.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김은경 옮김
17. 혁명의 해부 황종대 옮김
18. 의심을 거친 믿음 임형권 옮김
19.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황종대 옮김
20. 기술체계 이상민 옮김
21. 자연법의 신학적 의미 강만원 옮김
22. 마르크스 사상 안성헌 옮김
23. 무의미의 제국 하태환 옮김
24. 굴욕당한 말 박동열/이상민 옮김
25. 마르크스의 후계자 안성헌 옮김
26. 우리의 기도 김치수 옮김
27. 개인과 역사와 하나님 김치수 옮김
28. 존재의 이유 김치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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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번째 자끄엘륄 총서기독교윤리에 대한 신학적 비판기독교 윤리가 수립될수 있는 가능성,
기독교 윤리가 수립되어야 할 필요성,
기독교 윤리가 수립되어서는 안 되는 불가능성을
치밀하고도 일관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기술한 책. - 프레데릭 호뇽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현재적 명령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은 너무 쉬운 말이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이 침묵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우리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의미가 없고 하나님은 너무나 멀리 있는 것 같은 그 냉담하고 메마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하늘에 있고 나는 땅위에 있다는 진리의 한 측면만을 절감하고 있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인이기를 그만두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멈춰야 하는가? 아예 살아가는 것 자체를 멈춰야 하는가? 물론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그래서 이웃과 교회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동일한 은혜를 증언하는 이웃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동일한 진리를 증언하는 교회가 있어야 한다. 영적인 조력과 신앙의 고백이 필요한 것이다. 거기에 또한 하나님이 개입하여 역사할 것이다. 그러나 삶의 방식에 관해서, 내려야 할 결정들에 관해서는 어떻게 하는가? 그 결정들이 신앙적으로 결정해야 될 사항들일지라도 말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교회가 제시하는 윤리가 담당할 몫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실천하는 도덕이 도움을 주고, 하나의 본보기이자 길을 제시해줄 것이다. 하나님의 부재와 신앙적인 회의가 감도는 시기에는 그 도덕을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는 일종의 보완적인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결코 그 역할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전하는 진리가 다시 신자에게 임했을 때, 결코 간섭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고, 살아있는 말씀과 경쟁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 서문]패를 숨김없이 다 내보여야 한다. 도덕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지적으로나인격적으로나 겸허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약간의 기만이라도 있으면 글의 신뢰성은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의미를 찾는 연구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를 연구하는것이기에 단순히 지적인 이론을 수립하는 것으로 끝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서 전제 설정이 없이 도덕을 연구한다는 구실을 내세우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우리는 전제의 설정이 없는 연구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전제 설정이 없다며 무지나 거짓에 불과한 주장을 펼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명확하게 전제를 설정하고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이 더 낫다.
스탕달은 “나는 여기서 가면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자신의 삶을 엮는 아주 은밀한 실타래와 같은 삶의 행적에 관해 사실대로 진실하게 쓰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동일한 말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가면을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원에 그쳐야 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맨얼굴로 솔직하게 기술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고백하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 내 사상의 기준과 내용은 성서 계시이다. 그 출발점은 성서의 계시로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방법은 변증법으로서 성서 계시는 이변증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윤리에 관해서 성서의 계시가 전하는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명확한 전제가 있다고 해서 이 책이 오로지 그리스도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나는 이 책의 아주 중요한 가치는 상반된시각들이 서로 맞부딪치는 데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책은그리스도인의 고유한 관심사와도 관계가 없다. 퇴폐적인 서구 문명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자신의 삶의 규범에 관해 스스로 자문하게 된다. 더구나 성서 계시는 좁은 범위의 선택된 사람들에게 한정되는것이 아니다. 성서 계시는 먼저 타인들에 관해 얘기한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삶과 도덕에 관해 얘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가진 애초의 선입견을 분명히 밝혔고, 어떤 오해도 있을 수 없도록 내가취한 입장도 정확하게 규명하였다. 그런데 아직 내게 할 말이 하나 남아 있다. 그것은 내가 이 책을 쓸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전문적인 신학자도 철학자도 아니다. 철학이 우리 시대에는 하나의 전문기술이 된 탓에, 나는 전문가로서 하등의 자격도 없다. 대학 과정에서 체계적인 단계를 밟지 않았다면,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나는 사람답게 되려고 노력하면서, 이 시대에 충실히 살아가려고 한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불안을 느낀다. 체계도 규범도 없는 사회 속에서 나는 우리의 공통된 방임적 태도를 인지하고 있다. 나의 일은 깊이 성찰하는 것이다. 나는 다만 한 인간으로서 내가 맡은 일을 하고자 했다. 나는 전문가들이 수없이 연구한 수많은 문제와 마주칠 것이다. 그 문제들에 대해 나는 무자격자의 독창적인 시각과 순수함으로 접근할 것이다. 나는 윤리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일을 삼갈 것이다. 독자들은 현존하는 수천 가지 정의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정의는 각기 타당한 측면이 부분적으로 있다. 그러나 단지 부분적으로만 타당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한번 어깨를 으쓱하며 내 말을 무시하고 말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 한사람쯤은 귀를 기울이리라.
*자끄엘륄총서*1.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박동열 옮김
2. 뒤틀려진 기독교, 박동열/이상민 옮김
3. 하나님이냐 돈이냐, 양명수 옮김
4. 잊혀진 소망, 이상민 옮김
5. 이슬람과 기독교, 이상민 옮김
6. 하나님은 불의한가?, 이상민 옮김
7.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김재현/신광은 옮김
8. 요나의 심판과 구원, 신기호 옮김
9.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김은경 옮김
10. 무정부주의와 기독교, 이창헌 옮김
11.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곽노경 옮김
12. 정치적 착각, 하태환 옮김
13. 인간을 위한 혁명, 하태환 옮김
14. 폭력에 맞서, 이창헌 옮김
15. 선전, 하태환 옮김
16.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김은경 옮김
17. 혁명의 해부, 황종대 옮김
18. 의심을 거친 믿음, 임형권 옮김
19.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황종대 옮김
20. 기술체계, 이상민 옮김
21. 자연법의 신학적 의미, 강만원 옮김
22. 마르크스 사상, 안성헌 옮김
23. 무의미의 제국, 하태환 옮김
24. 굴욕당한 말, 박동열/이상민 옮김
25. 마르크스의 후계자, 안성헌 옮김
26. 우리의 기도 김치수, 옮김
27. 개인과 역사와 하나님, 김치수 옮김
28. 존재의 이유, 김치수 옮김
29. 자유의 윤리1, 김치수 옮김
30. 원함과 행함, 김치수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