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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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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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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맞이한 위기의 순간에
그리스도인들이 선택할 행동기준이 여기 있다.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분열이 일어나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지만 지금껏 이 분열을 적극적으로 다룬 책은 없었다. 그러한 위기의 순간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그리고 그 위기를 통과한 사람들은 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다룬 책도 없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종종 자신이 속한 교회의 분열과 직면한다. 그 화염의 소용돌이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그것이 그들의 인생을 파괴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혹독한 시련에 잘 준비되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 바로 그 위기에 들어선 그리스도인들에게 진 에드워드가 새로운 행동기준을 제시하며 후유증 없는 해결책을 내놓는다.
당신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는 『세 왕 이야기』에 감명받은 그리스도인 중 한 사람이라면, 이 책 『믿음의 정상에 오를 때』가 주는 메시지에 깊이 빠져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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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개신교 신자들이 행하는 종교적 관행들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처음 세우셨던 교회, 그 1세기 교회와 전혀 상관없는 것들임을 당신이 알게 된다면?
우리 복음주의자들이 행하는 거의 모든 종교적 관행들이 처음 교회와 상관없이 지난 500년 동안 불쑥 튀어나온 것들임을 당신이 알게 된다면?
그런 관행들이 성경과 상관없이 우연히 시작되어 우리들 가운데 뿌리내린 것들임을 당신이 알게 된다면? 이 모든 관행들이 신약성경을 따른 것이며 처음 1세기 교회가 행했던 것이고 “명백히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우리가 주장하며 가르치려 할 때, 실제로는 역사를 왜곡하는 것임을 당신이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 새로운 발견들이 당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까?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관행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는 이 책을 구태여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현재의 기독교 관행에 진저리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지금까지 읽은 어떤 책보다도 흥미진진한 문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당신을 급진적인 사람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아니 어쩌면 급진주의 그 너머의 영역으로 당신을 이끌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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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신의 열애』 다음으로 심혈을 기울인 책!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이
그 원래의 방식에서 우리가 완전히 벗어나 있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교회와 신앙의 관습들!
처음의 그것들과 거의 180도 다른 것들이라면?
목사로 훈련받는 젊은이들!
예수, 그분의 방식보다 이교도 전통에 더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면?
복음주의 전통으로 알려진 관행들보다 온전한 믿음의 삶으로 들어가는
더 나은 방식, 더 고상한 다른 길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 책은 이론을 다투지 않는다. 평생 “가정교회운동”의 급진적인 한 축을
담당해온 사람이 썼다. 『기독교가 상실한 유산들』은 복음주의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뿌리를 흔들고 현행 복음주의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관행들을 단호히 허물기 위해 쓰였다. 흔들고 허무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허물어진 그 자리에 더 고상하고 나은 길을 분명히 열어놓는 것이 목적이다.
이 책은 당신의 복음주의 사고방식에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다. .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우리가 현재 행하는 믿음의 방식들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그분의 방식을 무시해왔다. 이제는 역으로 우리가 행해왔던 그 방식들을 무시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그 방식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그 방식들은 우리에게 돌아올 준비를 마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 날을 서두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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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적 교회는 평신도가 스스로 성장하는 교회이다 신약성경적 교회는 1세기 교회의 탄생과 성장과정과 성령의 견인하심을 건너 뛰어서 경험할 수도 업고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살아나기 위해선 거룩한 생명에 의해 신자들이 한 몸을 이루는 방법밖에 다른 길이 없다. 태아의 몸이 스스로 코를 만들어내는 것만큼이나 분명하게 유기적으로 기능하는 교회들은 자발적으로 장로나 또 다른 눈, 코, 입 등을 만들어낸다.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지 않고 홀로 남겨졌을 때 교회는 자라고 또한 생산한다. 아니 그때서야 비로소 교회는 에클레시아가 된다. 그러나 교회를 홀로 두기 전까지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유기적 교회는 바울이 교회를 세웠던 바로 그 방식이다. 바울이 이방에 세웠던 모든 교회들은 예외 없이 홀로 남겨졌고 홀로 남겨진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롯이 살아남아 그들만의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한편 그들만의 독특한 에클레시아의 특징을 드러내었다.
유기적인 교회가 되기 위한 필수 요소는 무엇인가?
첫째는 복음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이제 그만 포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목사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라. 그가 그 자리에 있는 한 유기적인 교회생활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홀로 남겨지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오로지 홀로! 물론 초기에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엔 홀로 남겨져야 한다! 6개월 정도의 도움을 받은 후, 아니면 1년 정도. 그 후엔 홀로 남겨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기적인 교회는 그리고 진정한 교회생활은 결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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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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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방식을 따를 것인가? 현대 신학교의 교육방식을 따를 것인가?이교도에서 시작한 신학교육을 넘어서... 저자는 하나님의 부름 받은 젊은이들을 대하는 신학교 방식의 교육이 결코 기독교신앙에 부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신학교가 취하는 교육개념은 안타깝게도 이교도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훈련시키는데 별 실효를 거두지도 못한다. 우리는 그분의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좀 더 성경적인 방식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다가올 세대의 교회에 주님께서 요청하시는 변화를 우리는 조금도 꾀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단지 몇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외람되고, 급진적이고, 대담하고, 용기 있으며, 선구적인 몇 몇 사람들, 이 책은 바로 그들을 위해 쓰였다. 이 책에 언급된 내용들이 빛을 보려면 30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부름 받은 사람들을 길러내는 현대 신학교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날 것이다.
신학교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추적해 들어가다 보면 과연 무엇이 현대 신학교를 만들어냈는지 발견하게 된다. 그 기막힌 결과를 기대하시라. 여신 뮤즈에 뿌리를 둔 그리스 교육! 서양 교육과 신학교는 바로 그 기초 위에 세워졌다. 신학교의 역사를 관통하는 동안 당신은 어떤 흐뭇한 사실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오늘날 신학교 관습들을 잉태한 역사적 뿌리들을 직면하면서 당신도 모르게 “우리에겐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라고 외치게 될 것이다.
이 책이 설득력을 갖는 까닭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하나님의 일꾼들을 훈련시키는 진정한 방식으로 불러오는 것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그의 여덟 젊은이를 가르쳤던 방식이다. 이 간결한 방식이 신학교 훈련보다 훨씬 더 나은 방식임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선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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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 → 10,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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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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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이야기꾼이며 영성가인 진 에드워드가
진짜 하고 싶었던 교회 이야기 ! 가정교회, 어떻게 시작할까
가정교회, 왜 실패할까
가정교회, “목사직”을 포기하다
가정교회 지도자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진 에드워드가 『세 왕 이야기』 『신의 열애』 등 모든 저서를 통해서 진리를 증언하며 독자를 초대하려는 최종 목적지는 유기적 교회 즉 가정교회다.
어떤 주제를 다루건 천부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실제 그의 사역 대부분은 유기적 교회를 개척하고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훈련시키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의 탁월한 이야기가 주는 달콤함에 매료되면서도 그가 안내하는 영광스러운 교회의 모습까지는 동행하지 못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신약교회의 모임 방식은 유기적으로 모이는 가정교회이다. 그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냉철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 책은 평생 유기적 교회, 가정교회 운동에 헌신해온 진 에드워드의
가정교회 관련 4권의 단편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이 책은 한국의 독자만이 만날 수 있는 복된 선물이다.
이 책이 신약교회를 추구하며 시작하려는 모든 이들의 손에 팡세처럼 들려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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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0 → 16,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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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동역자 브리스길라가 남긴 로마서와 고린도후서의 비하인드 스토리!3차 전도여행 후반부는 이동거리만 무려 5,000km!이 책은 에베소를 출발하여 로마로 호송되기까지 험난했던 바울의 여정을 1세기 언어로 그리고 있다. 특히 바울의 동역자 브리스길라는 이 일기를 통해, 바울의 최고의 편지로 평가되고 있는 로마서의 숨은 뒷이야기와 고린도 교회에 두 번째 편지를 보내는 바울의 속 깊은 마음을 전하고 있다.
[출판사 서평]『세 왕 이야기』저자, 진 에드워즈는 이 책에서
로마서와 고린도후서의 가슴 벅찬 비밀을 공개한다!1세기 로마가 온 세상을 지배하던 그 시기에
복음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본서는 그 생생한 대답을 1세기의 언어로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오늘날 교회처럼 세련되거나 그럴듯한 조직도, 문화도 없었지만, 신분과 지위 그리고 소유를 넘어선 “영혼의 자유”가 있었다. 본서는 ‘로마에 보낸 한 통의 편지’를 통해서 이 복음의 능력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해 준다.
특히 본서는 바울이 왜 드로아에서 복음의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마케도니아로 떠났는지, 고린도 교회에 보낸 ‘눈물의 편지’는 바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에게 항상 존재했던 가시는 무엇이었으며, 모든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온갖 고난이 기다리고 있던 예루살렘 행을 끝까지 고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를 자세히 기록한다. 체포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당당하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바울의 모습에서, 로마 총독과 아그립바 왕앞에서 초연하게 복음을 선포했던 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본서는 1세기 언어로 우리에게 복음의 의미를 분명하게 전해준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에 감춰진 이야기들을 퍼즐처럼 맞춰가며 읽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탄성이 터져 나올 것이다. 이 책을 모두 읽은 후, 로마서와 고린도후서를 다시 읽어보라. 로마서와 고린도후서의 의미가 하나하나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은>1. 본서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한 1세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재구성하고 있다.
2. 복음은 단순한 이론이나 교리가 아닌,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을 구원한 삶의 이야기다. 따라서 본서는 복음이 추상적인 삶이 아닌 그들의 일상의 삶 그 자체였음을 그리고 있다.
3. 복음은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혼의 비밀 무기였다. 본서는 복음이 어떻게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신분과 지위와 소유를 넘어선 영혼의 자유를 가져다주었으며, 모든 고난과 억압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지를 보여준다.
4. 특히 본서는 1세기 고대 로마와 고린도 교회의 일상을 그리고 있으며, 바울의 최고의 편지로 평가되고 있는 로마서와 고린도후서에 담겨진 숨은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당신의 삶은 신분과 지위와 소유를 넘어선 영혼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브리스길라의 일기>는 1세기 언어로, 복음이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진 에드워즈의 이야기 사도행전 시리즈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실라의 일기』(구 이야기 갈라디아서) -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이야기
-『디도의 일기』 -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이야기
-『디모데의 일기』 -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이야기 (전반부)
-『브리스길라의 일기』(구 이야기 로마서) -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이야기 (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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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왕 이야기> 의 저자 진 에드워드가 쓴 또 하나의 역작!하나님께 실망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실망하는 내가 과연 크리스천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언제 당신을 힘든 처지에 내려놓으십니까?
하나님께서 기대에 맞지 않게 행하실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합니까?헤롯의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은 그의 기대와는 달리 행하시는 주님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며. 석방의 기약 없이 어둡고 축축한 감옥에 앉아 하루하루를 보내는 요한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겠는가? '왕이라는 분은 어디 계신거야? 능력 있는 자는 어디에... 예수님은 어디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 이런 의문을 품고 실망하고 절망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더 그러하겠는가?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 둘은 사촌이고, 서로 알고 지냈으며, 아마도 친구였을 것이다.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영광 가운데 예수님이 누구인지 그에게 보여주셨다. 그러나 많은 의문을 일으키면서도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시지 않는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마저 침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신가?" "하나님께서는 왜 침묵하시는가?" 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는 그러나 차마 대놓고 묻지 못하는 이 문제들을 진 에드워드는 세례 요한의 일생을 조명하며 심도 있게 다룬다. 감동적인 이 한 편의 드라마를 통해, 우리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길을 따라 행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 보다 깊은 믿음과 보다 분명한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는 그러나 차마 대놓고 묻지 못하는 문제들에 대한 통찰력 있는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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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1800년 동안 미루었던 혁명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방식에 혁신적인 변화를 갈망해 왔는가?
그 갈망에 도화선이 되어줄 책이 여기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지금까지 성경을 배우던 방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것이다.
우리가 신약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신약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들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새롭게 펼쳐놓을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바는 이렇다.
“바울의 서신들은 완전히 뒤엉켜 있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신약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 책은 뒤엉킨 그 서신들을 원래 기록된 순서대로 재배열하고 있다.
그 순간 아름다운 1세기의 이야기가 성경에서 걸어 나온다.
느닷없이 우리 눈에 1세기의 전경이 들어오고 그렇게 열린 시각은 1세기의 그것과
오늘 우리의 기독교를 자연스럽게 대조해준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기독교라고 믿고 행했던 모든 관습들에 대담한 도전을 던진다.
그렇다. 이 책은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책이다.
작가는 젊은 시절에 신약성경을 연대순으로 읽기 시작했다.
우리 앞에 내놓는 이 책은 그의 평생에 걸친 탐구의 결과이다.
기대하라. 신약성경의 각 서신들이 제 자리를 찾았을 때
당신은 각 서신들 뒤에 숨겨진 배경까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단순한 한 권의 책을 뛰어넘어이 책은 우리 기독교가 나아가는 길에 기념비적이고 획기적인 성과이며 역사적인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수세기 만에 처음으로 우리는 신약성경을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전례 없는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전혀 알 수 없었던 신약성경을 선명하게 보게 되었다. 이 책은 그동안 묶여있던 성경을 풀어내는 동시에, 지난 1800년 동안 우리의 눈을 가려왔던 수건을 벗겨 낼 것이다. 만약 이 책이 300년대에 나왔더라면 각 세기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을 따르려는 그들만의 모델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1세기의 모델을 회복하고자 노력하는 역사가 진행되어 왔을 것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은 1세기 기독교가 과연 어땠는지에 대한 선명한 관점을 제공해 준다.
신약성경의 혼란스런 배열이 지난 1800년 동안 우리에게 가져온 폐해는 이제 여기서 끝나야한다. 이 책은 우리가 견지해야 할 우리 신앙의 원형이 무엇인지 명확한 관점을 내놓는다.
이 책은 성경을 다시 배우는 획기적인방법을 제공할 뿐 아니라 우리 믿음의 삶을 개혁할 잠재력도 가지고 있다.
두 개의 서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 서재에는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성경의 순서대로 신약 27권이 배열되어 있다. 두 번째 서재엔? 오직 이 책 한 권뿐이다.
이 책이 당신의 손에 쥐어지기까지 저자는 초기 로마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평생을 보내야 했고, 신약성경을 처음 기록된 순서대로배열하는 일에 40년의 시간을 소비하였다.
새로운 성경공부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한다.
신성불가침 영역신학교 두 번째 해에 나는 로마에 살고 있었다. 그 전엔 성지(聖地)에서 지냈는데 거기 살면서 나는 바울의 발자취를 추적했고, 그의 편지들이 기록되었던 시대와 장소들이 지금 내가 보는 신약성경의 순서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왜 우리는 바울이 기록했던 대로 그의 편지를 읽지 않는 걸까? 기록된 순서대로 읽어야 그 의미를 더 명확히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내게 떠오른 말이 있었다. 나의 성경교사 중의 한 분이 하신 말씀이었다. “바울의 서신들은 모두 신약성경 한쪽에 몰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찾아 읽기에 편합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성경학자들이 문서의 연대순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깜짝 놀란 나의 반응은 이랬다. “바울은 51년에 데살로니가전서를 썼습니다. 디모데전서를 쓴 것은 67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 서신들은 한 덩어리로 뭉쳐있습니다. 이 무시된 채 말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어떻게 우리가 신약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나의 공부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 당신에게도 이 공부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의 목차로 돌아가 보자.
바울이 13편의 서신을 각각 작성했던 시간적 순서는 지금 당신의 신약성경 속에 배열된 순서와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
어떻게 이런 혼란이 찾아왔을까?
이 괴상한 신약성경의 배열은 A. D. 200년쯤, 낱개로 존재하던 신약성경 문서들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냈던 제본업자의 손에서 일어났다. 다시 말하면 신약성경은 이 많은 순서대로 배열된 것이다. 바울서신 또한 분량이 많은 편지에서 분량이 적은 편지 순으로 그 순서가 정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1800년 동안 그 문서들의 순서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주어진 대로 읽어왔던 것이다.
나는 성지를 떠나 로마로 갔다. 내가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자료들을 처음으로 접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땅에서다.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나는 그에 대한 자료를 탐구하고 글을 쓰는데 거대한 산 하나를 넘어야 했다.
1세기의 역사에 대해 신학교 교육이 내게 준 것은 거의 없었다. 이 주제에 대해 기독교 서적들이 다룬 내용들은 심각할 정도로 오류가 많았다. 그런데 바울서신들의 배열은 여전히 수정되지 않은 채 읽혀지고 있다!) 을 설명한다며 1세기의 역사를 다루려는 시도가 있긴 했지만, 그 역시 열악하긴 마찬가지였다. 1세기의 기독교 역사는 연대순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동시에 로마제국, 이스라엘,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 이 세 측면이 하나로 이해되어야 한다. 1700년 전에 죽은 한 제본업자가 우리에게 물려준 대로의 순서가 아닌, 그 문서가 원래 기록된 연대순으로 배열된 성경을 유기적으로 읽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문서들이 주는 시간적 간격들로 인해 우리는 성경을 이해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리가 그동안 의존했던 성경학자들은 로마제국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첫 세기 그리스도인들과 연관 짓는 방식을 무시해왔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같이 놓아야만 우리는 당시의 전체적인 상황과 그 가운데 전개된 일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로마에 머무는 동안, 나는 1세기 로마의 전통적인 역사와 함께 당시로선 처음으로 시도되던 연구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그 연구는 오늘날 교회고고학이란 이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철저한 개신교도, 더구나 침례교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는 예수회 학자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특히 교회고고학에 대해 치기어린 질문을 던지던 19살의 풋내기를 그들은 오랫동안 잘 참아주었다.
대부분의 성경고고학은 구약성경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교회고고학은 30년부터 100년 사이의 증거들에 초점을 둔다. 현재까지도 이 영역은 초기단계의 연구에 머물러 있는데, 오늘날의 신학교육은 여전히 이 영역을 무시하고 있다.
나는 그곳에서 개신교도들이 접근하지 않는 장소들과 자료들을 접촉할 기회를 얻었다.
B.C. 4세기-A.D. 70년 사이, 특별히 사도행전과 바울서신들을 둘러싸고 실제 펼쳐졌던 일들을 알고 싶은 마음이 내안에 불타올랐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이후 40년 넘게 달려온 열정의 결과물이다.
이제 우리는 오순절 날에 시작되어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그 해까지 존재했던 교회들을 방문하고자 한다. 거기에 로마황제들, 제사장들, 군인들,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이 그곳에서 정녕 무슨 일을 했는지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해에 일어났던 일들과 당시 교회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이리저리 뒤섞여버린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들을 통해서는 이런 재발견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오직 병행되는 사건들을 통합적으로 볼 때만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러한 재발견은 충격적이고 혁명적인 이해를 우리에게 제공할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의 성경에 대한 이해가 허물어지면서 당신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의도하는 바이다.
당신이 알게 될 또 한 가지의 사실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적인 신앙행위라고 믿고 행하는 많은 일들이 당시 1세기 그리스도인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너무나 거대하면서도 너무도 다른, 그렇지만 지극히 성경적인 이 새로운 재발견이 우리 모두에게 도전을 던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