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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복음은 그 본성상 개인의 내면에 머무를 수 없다. 교회 안에만 머무를 수도 없다. 복음을 품은 사람은 세상을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가 세상을 향하는 방식은 사회로부터 전혀 지지받지 못했고, 내용에 있어서도 복음과 일치하기는커녕 그저 불미스러울 때가 부지기수였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이 책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공공신학을 정치철학과 연계하여 소개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지구 곳곳의 공공신학 논의들을 전반적으로 조망하고, 이에 기대어 한국 기독교의 공공성을 되짚어보며. 더 나아가 공적 영역에서 기독교의 사명이 무엇인지와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방식을 더욱 신중하고 심도 있게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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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세상!
그리스도인은 이들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설정해야 하는가?
칼뱅주의자 아브라함 카이퍼가 제시한
공공신학과 성령론에서 그 길을 찾다!“카이퍼의 공공신학은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공공의 영역에 참여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모든 변명거리들을 제거한다. 만약 실제로 창조세계의 ‘모든 땅’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그것을 보존하시는 주권자이신 하나님 아래에 있는 것이라면, 기독교인은 공공의 삶의 다양한 분야들에 활기차고 용감하게 참여하여 그들의 청지기적 과제를 감당해야만 한다.”
오늘날 21세기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신앙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카이퍼의 시대부터 1세기를 지나면서 오늘날 세상은 급격하게 변해 왔다. 무엇보다 세속화의 물결이 거세다. 다원화와 상대화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가운데서 교회와 세상의 간격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세속화된 세상에서 물러나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치를 고수하는 삶의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 기독교의 신앙과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또한 세상의 타락과 세속화를 억제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말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 전통에는 그 못지않게 훌륭한 대안 한 가지가 또 있다. 우리가 세상에 발을 딛고 그 문명을 이용하거나 누리는 이상, 어떤 면에서는 이 대안이 더 바람직한 것일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카이퍼주의요, 카이퍼의 공공신학이다. 물론 이것은 카이퍼의 순수한 창작물이 아니다. 카이퍼는 이것을 칼뱅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칼뱅에게서 얻은 영감과 통찰을 토대로, 그가 속한 시대에서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그의 공공신학을 전개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또한 우리가 속한 시대에서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칼뱅과 카이퍼를 좋아 공공신학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카이퍼의 통찰과 도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비전대로,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나 기독교 기관들 외에 다른 영역들에도 책임 있게 관여한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사회의 발전과 출현을 보게 될 것이다.
“교회의 벽 바깥에 있는 삶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령 그것이 신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직접적으로 입증할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카이퍼는 그런 경우에라도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문 중에서]이 기획은 공공(公共, public)의 영역에 기독교가 참여하는 일과 관련해 신학적으로 유효한 근거를 찾고 설명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네비게이토 같은 선교단체와 미국 복음주의의 하위문화(subculture)를 경험하면서, 기독교인들과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크게 강조하는 기독교적 삶의 방식에 줄곧 노출되어 왔었다. 이러한 기독교적 삶의 방식에서, 문화 활동에 참여하는 일은 그러한 활동이 분명하게 기독교적인 경우에만 장려되었다. 다시 말해 그런 활동에는 복음주의적이거나 영적인 교화를 목표로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행동을 비롯해 여러 방식의 사회적인 참여들이 지닌 가치들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런 상황들에 대해 나는 매우 실망했다.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를 사회와 문화에 속한 것들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에 참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를 긍정하는’ 사람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트리니티에서 공부하는 중간 무렵에, 두 분의 교수님이 문화와 공공의 삶의 신학이라는 주제로 나를 이끌면서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년)라는 네덜란드 사람의 책, 특히 Stone Lectures on Calvinism을 소개해 주었다. 문화신학(culture theology)에 관한 카이퍼의 텍스트를 읽는 것은 당시 내게 꼭 필요했던 산소로 호흡하는 것과도 같았다. 카이퍼가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을지라도ㅡ인종에 관한 그의 견해에 있는 문제가 두드러지는 예다ㅡ, 나는 칼뱅주의를 공공의 영역에 참여하는 것을 격려할 뿐만 아니라 요구하기까지 하는 삶의 체계로 보는 그의 시각에 매료되었다. 스톤 강연에서, 카이퍼는 창조 질서의 모든 측면에 기독교가 참여해야만 하는 근거와 동력으로서 일반은혜 교리를 제시했다. 이 교리에 관해 읽으면서 나는 창조세계에 관한 기독교의 긍정을 처음으로 접했다. 카이퍼가 타락이라는 언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그가 운명론에 빠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세계가 혼돈 속에 있지 않다는 사실과, 기독교인들에게 창조세계 안에 잠재해 있는 가능성들을 개발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인의 행동을 촉구하는 카이퍼의 요청에 깊이 공감했다.
카이퍼가 말한 것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성령론과 공공신학에 관한 카이퍼의 접근방식을 현재 시대에 비추어 재상황화(recontextualization)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카이퍼의 성령론과 공공신학을 일관성 있게 재상황화하는 것은 그의 통찰을 현재로 끌어오는 길을, 그리고 다가올 수십 년 동안 보다 심도 깊게 사용할 수 있게 기초를 놓는 길을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의 책이 과거로 잠깐 외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이런 시도가 꼭 필요하다.
성령론의 영역에서 나는 특히 창조세계에서의 성령님의 역할을 다루고, 또 그 결과로 문화개발, 환경, 그리고 정치 일반과 같은 영역들에서 공적인 함의에 관해 숙고했던 저자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이것은 성령론에 관한 전형적인, 특히 내게 익숙한 복음주의의 진영에 속한 접근방식이 아니다. 오순절 교회, 은사주의 운동, 그리고 제3의 물결(the Third Wave) 등이 지난 세기에 성령에 관한 교리에 상당한 관심을 갖게 했다. 하지만 성령론에 관한 책들 대다수가, 또는 조직신학의 책들에서 성령님과 관련된 부분이 다루고 있는 초점은 구원론에서 말하는 성령님의 사역과 관련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중요한 쟁점들은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신자들에게 적용시키는 방법을 더 잘 이해하게 하시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 내가 초점을 두는 것은 창조세계에서의 성령님의 사역에 접근하되, 분명하게 구속적이면서도 또한 기독교인의 사회참여를 위한 근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개인들을 구속하는 방식을 새롭게 숙고하는 것은 언제나 현명한 것이기는 하지만, 창조세계에서의 성령님의 사역이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ㅡ정치에서 문화와 환경 윤리에 이르기까지ㅡ책임 있는 참여를 어떻게 촉발시키는지를 이해하고 드러내는 것 역시 똑같이 중요하다. 다르게 말하면 나는 성령님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그래서 창조 질서와 신중하게 상호작용하는 데 필요한 신학적인 근거에 도달하는 길을 찾고 있다. 이러한 성령론적인 연구는 나로 하여금 기원에 관한 쟁점과는 다른 면에서 창조 교리를 이해하는 접근방식을 고려하도록, 그래서 창조세계와 역사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도록 이끌었다.
현대의 사유 중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게이코 뮐러-파렌홀츠(Geiko Muller-Fahrenholz), 그리고 마크 월러스(Mark Wallace) 같은 인물들은 특히 성령론, 환경, 그리고 사회정치적 참여 사이의 관계에 대한 최근의 접근방식을 밝히는 나의 연구에서 한 줄기를 차지한다. 창조세계에서의 성령님의 사역이 자연세계에 접근하는 특별한 방식을 어떻게 제시하는지 질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특별히 환경에 대한 관심사가 현대의 사회정치적인 지형에서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사회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함의에 관해서는 다소 성찰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콜린 건톤(Coin Gunton), 클라크 핀녹(Clark Pinnock), 그리고 싱클레어 퍼거슨(Sinclair Ferguson)은 창조세계에서의 성령님의 사역에 관해 중요한 접근방식들을 설명해 준다.
칼빈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의 존 볼트(John bolt)는 제4장에서 주요한 대화 상대자인 아놀드 판 룰러(Arnold A. Van Ruler)를 내게 소개해 주었다. 그는 창조세계에서의 성령님의 사역에 관해 독특한 성령론적인 관점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범주들을 내게 제공해 주었다. 비록 그의 책이 구원론에 강조점을 두기는 하지만, 그것은 창조세계에 대한 나의 관심에 적합했을 뿐 아니라 창조세계에서의 성령님에 관한 카이퍼의 교리를 현대화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요한 영역들에 기여하게 되기를 바란다.
첫째, 나는 아브라함 카이퍼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통찰을 제공하고 싶다. 미국에서 카이퍼는 사상가(a man of ideas)로 이해되는데 반해, 네덜란드에서 그는 우선적으로 역사적인 인물(a historical figure)이다. 비록 이 책에서는 주로 카이퍼의 사상들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 역사적인 인물은 특히 그의 공공신학에 관한 평가에서 나타난다. 나는 이 책이 네덜란드의 유산인 교계와 학계를 넘어 카이퍼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들추어 낼 뿐만 아니라 이 복잡한 사
람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해시켜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둘째, 나는 이 책이 성령론 분야에 기여했으면 한다. 완전한 삼위일체 신학은 성령님의 사역이 단지 구원론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들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을 필요로 한다. 창조세계에서 행하시는 성령님의 비구속적인 사역은 중요한 것으로서, 신학적인 성찰과 표현을 필요로 한다. 나아가 창조세계에서의 성령님의 사역에 관해 성찰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주적 성령론과 공공신학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다.
공공신학은 내가 세 번째로 기여하기를 희망하는 영역이다. 공공신학의 개념을 모든 창조 질서의 청지기직에까지 확장시킴으로써, 나는 훨씬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라는 소수거주지(enclave)에서 살아가는 삶을 넘어서도록 도전하는 공공신학의 발전이ㅡ주로 복음주의 영역에서겠지만 또한 그 영역을 넘어서까지ㅡ시작되기를 바란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교회나 기독교 기관들 외에 다른 영역들에도 책임 있게 관여한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사회의 발전과 출현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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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 도성과 지상 도성을 연결하는 문화적 예전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누가 공론장에서 종교를 말하기 두려워하는가?
정치의 종교성과 종교의 정치성을 섬세하게 그려 낸 역작!“『왕을 기다리며』는 분명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 기독교의 공적 증언에 관심 있는 많은 새로운 독자까지도 향후 수십 년 동안 이 책을 필독서로 꼽을 것이다.”
_크리스틴 디드 존슨(웨스턴 신학교)
김진혁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우병훈 교수(고신대학교), 유해무(전 고려신학대학원),
이국운(한동대학교), 이승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스탠리 하우어워스(듀크 대학교 신학대학원 명예교수),
한스 부어스마(내쇼타 하우스), 피터 라잇하르트(테오폴리스 인스티튜트 총장), 에릭 그레고리(프린스턴 대학교 교수), 유벌 레빈(「내셔널 어페어스」 편집자) 등 추천!분리된 정치와 종교를 다시 연결하는 상상력을 재발견하다!
세속 시대를 이방인 거류민으로 살아내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향연!문화적 예전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책에서는 정치에 관한 오늘날의 논쟁에 대한 대안으로 다방면에 걸친 공공신학을 제공한다. 스미스는 정치의 종교적 본성과 기독교 예배의 정치적 본성을 탐구하고, 교회의 예배가 어떻게 우리가 공동선을 구축하는 데로 나아가게 하는지 그려 낸다. 명쾌하고도 재기발랄한 필치와 진지한 신학적·철학적 성찰이 조화를 이루어 샬롬을 지향하는 하나님 나라 공공신학을 제시한다.
[출판사 리뷰]정치는 본디 종교적이다자유 민주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정치적 공론장에서 종교는 천덕꾸러기처럼 보인다. 중립적이어야 하는 공론장에서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며 활동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장이 과연 중립적으로 작동하는가? 문화적 예전 시리즈의 앞선 두 책을 통해 예전이라는 렌즈로 인간이 사랑하고 예배하는 존재이자 문화적으로 형성되는 존재임을 보여 준 제임스 스미스는, 문화적 예전 시리즈 3권인 『왕을 기다리며』에서 동일한 렌즈로 정치를 바라본다. 우리는 사회에서 공적이며 공동체적으로 살아가는, 즉 정치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며, 우리가 늘 관계하고 있는 정치적 제도에 의해 형성되는 존재다. 우리는 단순히 정치적 장에서 활동하는 ‘생각하는 사물’이 아니다. 정치적인 것은 단순히 우리의 일상사를 관리하는 절차적 기술이 아니라 형성되는 우리의 욕망이 발현되는 구조적 특징이다. 정치적 장에서 우리의 형성은 예전적으로 이루어지며, 그렇기에 우리의 이러한 문화적 동화는 신학적으로 설명될 필요가 있다.
적극적 참여와 적극적 물러남 사이에서기독교와 정치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크게 두 스펙트럼, 즉 한편으로는 정치적 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 장에서 적극적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 사이에서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스미스는 자신의 배경인 개혁주의 진영에 그리스도인의 공적 참여와 현대의 다원주의를 성찰할 좋은 자원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현대 개혁주의에서는 기독교의 고유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복음의 특수성이 어떻게 정치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덜 강조해 왔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일군의 그리스도인들이 보이는, 기독교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정치 참여에서 물러나는 입장 역시 문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방어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치와 종교 사이를 누비는 섬세한 분석스미스는 두 스펙트럼 사이에서 미묘하고 섬세한 균형을 제시한다. 원래 문화적 예전 시리즈 3권을 ‘카이퍼주의자를 위한 하우어워스’로 기획했던 스미스는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기획을 확장하여 5세기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와 20세기 영국의 신학자 올리버 오도노반을 통해 풀어내는 정치신학으로 전환한다. 스미스가 이들을 다루며 제시하는 바는 세속성에 관한 섬세한 이해 및 서양 자유주의와 기독교의 관계에 관한 계보학적 분석이다. 이를 통해 스미스는 오늘날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신앙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여기에 복음의 분화구가 새겨져 있음을 드러내고, 비록 자유주의가 정치적 장을 왜곡하는 현상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복음을 통해 개선할 여지가 있으며 기독교의 예배는 여기에 기여한다는 주장을 도출한다.
위선을 넘어, 복음에 닻을 내린 사랑의 시민 윤리스미스는 이러한 논의에 곧바로 제기되는 도전, 즉 예배가 과연 기독교적 정체성을 담은 실천을 행하는 그리스도인을 형성할 수 있느냐는, 형성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예배에는 참여하지만 실제로 그 예배에서 행하는 예전적 실천과 괴리를 일으키는 예배 밖에서의 위선적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예배가 현실의 정치적 불의를 정당화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스미스는 여기에 답변하기가 쉽지 않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인종차별 문제에서 기독교가 행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인정한다. 그럼에도 그는 예배의 정치적 가능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예배가 정말로 복음에 닻을 내린 사회적 상상을 구현하고 있는지, 아울러 우리가 예배를 실천하며 예배가 품은 하나님 나라의 사회적 상상을 통해 우리 자신을 정말로 반성해 왔는지 돌아보길 권한다. 그러한 반성이야말로 지상에서의 예배는 늘 불완전하여 경쟁하는 여러 이야기에 포획당하기 쉬우며 우리 역시 세속의 시대를 살아가며 수많은 예전에 영향받는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실천은 왕이신 예수를 기다리는 종말론적 기대 가운데 수행되어야 하며, 하나님 나라의 사회적 상상을 품은 우리 이방인 거류민의 예배와 예배가 낳는 사랑의 시민 윤리는 늘 ‘키리에 엘레이손’(주님, 긍휼을 베푸소서)을 동반해야 한다. 기독교적인 공적 실천은 복음에 닻을 내린 순례자들의 끊임없는 자세 교정을 통해 구현된다.
[독자 대상]- 세속화 시대에 기독교 가치를 구현하는 삶을 고민하는 그리스도인
- 기독교 정체성이 정치 및 문화와 어떻게 관계하는지 궁금해하는 독자
- 교회의 공공성 혹은 공공신학 논의에 관심 갖는 독자
- 세속 사회에서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구상하는 목회자, 신학생
[문화적 예전 시리즈 소개]제임스 스미스의 문화적 예전 시리즈 3부작은, 지성주의에 치우쳐 있던 기독교 세계관 논의를 ‘예배’라는 관점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로, 고대 교회 전통과 현대를 철학적, 예전적, 정치적 신학으로 통합해 인간, 문화, 교회를 바라보는 통전적 시각과 기독교적 삶의 실천 방향을 제시하려는 기획이다.
1권.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2권.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
3권. 왕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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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국내 학자가 ‘공공신학’에 대해 다루는 본격적인 연구서다. ‘공공신학’은 종교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후기 세속 사회의 논의에 응답하고, 지구화 이후 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향한 시민 사회의 공론장에 참여해 기독교적 가치와 더불어 공공선을 실천하고자 한다. 서구에서 시작된 신학을 국내에 소개할 때 언제나 상황적 차이가 문제가 되는데, ‘공공신학’이 서구의 시민 사회와 공론장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적 적용과 실천을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변동과 그에 따른 공적 의제를 고려해야만 한다.
이 책은 ‘공공신학’의 신학적 전거들을 제시하며, 특히 문화적 측면에 방점을 둔다. 곧 사회적 의미를 생산하는 문화적 장치로서 기독교의 공적 역할에 주목하면서 ‘교회를 위한 신학’, ‘교회의 신학’에서 ‘광장의 신학’ 혹은 ‘담론장의 신학’으로 전환하기 위한 인식 전환과 방법론을 제시한다. ‘공공신학’의 독특함은 방법론에 있다. 즉 신학의 자리를 교회를 넘어 시민 사회와 공론장에 둠으로써 그에 맞는 새로운 신학 방법론을 요청한다. 이 책은 각 주제에 이러한 방법론을 적용해 논의를 전개했다. 여기에 더해 신학의 공공성은 신학 자체의 특성이고, 특히나 개혁신학은 종교개혁 이후 그러한 공공성을 강조해왔다는 점을 들어 ‘공공신학’의 개혁신학적 근거들을 제시한다.
각 소주제들은 ‘문화’, ‘청년’, ‘복지’, ‘공동체’, ‘지역사회’ 등의 의제에 대한 시민 사회의 논의와 신학적 논의를 교차시키며 교회의 공적 역할을 강조한다. 그것은 ‘공공선’(the Common Good)을 위한 후기 세속 사회의 종교적 역할로 연결된다. ‘공공신학’은 인간의 풍요와 공동체의 번영을 위한 사회적 협력에 참여하고, 더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위해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과 연대하는 교회의 새로운 선교적 요청에 응답하는 것을 지향한다. 다만 이 책은 이를 수행할 방법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함으로써 그 기초적인 작업에 충실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공공신학’에 대해 관심을 가진 입문자와 신학생, 신학자들에게, 특히 후기 세속 사회의 공론장에서 다시 제기되고 있는 새로운 종교 담론과 존재 양식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서구 신학자들의 책과 달리 한국 신학자가 한국 사회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특별히 이 땅의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실질적인 자극과 도전이 될 것이다.
후기 세속 사회의 종교 담론과 교회의 공적 역할오늘의 공공신학자들은 공공신학의 목적을 기존의 기독교적 방법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시민 사회의 다원적 질문들에 대해 새로운 방법의 신학적 응답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공신학은 매우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인간의 공적인 삶에 대해 기독교적 설명을 제시한다. 최근 ‘공공신학’의 위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공동의 선을 위해 또 공동의 유익을 얻기 위해 기독교 안팎의 사안에 대해 성찰적으로 참여하는 교회”를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신학적 방법론을 모색할 필요가 절실히 요청된다. 예컨대 전통적인 기독교 사회 윤리가 교회와 사회를 분리적으로 이해했다면, 공공신학을 정립해가는 과정은 사회적으로 상호 작용이 가능해야 하며, 신앙 공동체와 다양한 공공들 모두를 향해 안팎으로 담론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공공신학의 방법론은 외부로부터의 평가와 비판에 개방됨으로써 이해 가능한 용어로 구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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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해묵은 질문과 도전은 교회의 오랜 숙제다. 특히 한국사회처럼 누적된 모순과 갈등이 많고 변동이 심한 사회일수록 교회의 공적 책임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성찰이 필수적이다. 『한국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공적 신학』은 경건과 학문 간의 불가분리적 관계 안에서 실천, 특히 공적 실천을 위한 기독교 신학 및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어 쓰였다. 공적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고 실천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 아래, 다양한 차원들의 공적 영역에서 다른 학문들 및 전통들과 대화·소통하면서 하나님의 보편적 통치를 세상의 모든 공적 영역에서 구현하기 위해 행동하는 신학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한국교회를 위한 공적 신학”이다. 기독교 신학을 위한 일차적인 공적 영역은 교회다. 따라서 신학은 우선적으로 교회를 위한 공적 신학이어야 한다. 제1부는 제1장 “온전한 복음과 통전적 선교”, 제2장 “오늘의 한국교회의 도전과 과제”, 제3장 “기독교 역사 속의 교회론과 미래 한국교회의 패러다임”, 제4장 “경제난국시대의 교회와 목회의 패러다임”, 제5장 “미래 한국교회 지도자의 리더십”, 제6장 “한국교회의 남녀평등과 여성의 리더십”, 제7장 “통전적 생명신학과 한국교회의 선교적 과제”, 제8장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와 교회의 선교(missio ecclesiae): 공적신학의 관점에서”로 구성되어 있다. 교회는 그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전조이며 매개적 수단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자신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고 실천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한다. 신학의 공적 책임은 단지 교회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한 현실 변혁적 실천에 있다.
제2부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공적 신학”이며, 제9장 “공적 신학의 주요 초점과 과제”, 제10장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유형론적 고찰”, 제11장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실존”, 제12장 “오늘의 사회현실에 대한 신학적 진단과 교회의 사회 참여”, 제13장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와 현실 변혁적 교회”, 제14장 “한반도 분단 상황과 통일의 길”, 제15장 “화해의 신학”, 제16장 “차별과 평등”, 제17장 “창조와 진화”, 제18장 “21세기 탈근대적 시대의 신학의 길”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와 제2부의 내용은 서로 분리된 별개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교회의 존재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 나라에 있으며, 따라서 교회를 위한 공적 신학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공적 신학이기 때문이다.
공적 신학은 사회의 다른 영역들과의 상호적인 대화를 통해 다른 영역들로부터 배움과 동시에 기독교의 진리를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변증하고자 하는 “소통적” 측면과 사회의 모든 공적 영역에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실천적 행동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변혁적” 측면으로 구성된다. 필자는 이 책에서 오늘날 위기상황에 처해있는 한국교회의 갱신과 하나님 나라의 구현을 위한 신학의 “소통적-변혁적” 공적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본서는 한국의 신학자가 다룰 수 있는 공적 담론에 관한 주제들을 최대한 포괄함으로써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를 집약한 동시에 미래의 과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분야의 교과서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