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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0 → 16,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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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과 ‘성경’을 관통하는 지혜의 샘물을 긷다!” · 신앙과 삶의 깊은 지혜를 시적 절제의 검박한 언어로 쓴 책
· 우리 마음을 맑게 씻어 주고, 우리 모습을 비추어 보게 하는 책
· 설교와 묵상, 다음 세대의 한자 공부, 신앙 교육에 유익한 도구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의 동양 고전 《명심보감》과 진리와 생명의 말씀이자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거룩한 말씀인 ‘성경’. 두 책 모두 사람들의 죄악 된 마음을 맑게 씻어 주고,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게 하는 거울 같은 책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두 책을 곱씹어 읽고 묵상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지혜의 샘물을 길러 마시는 것과 같다. 본서의 저자는 소설가이자 동양 고전 연구가요 성서학자로서, 이 두 책을 관통하는 지혜의 말씀들을 엄선해, 독자들이 사유와 묵상을 통해서 지혜의 샘물을 한껏 길어 마실 수 있도록 시적 절제의 검박한 언어로 풀어 설명했다. 묵상뿐만 아니라 설교의 예화들을 풍부히 제공해 줄 수 있으며, 다음 세대의 한자 공부와 신앙 교육에 매우 유익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세상에 없던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서문]《명심보감》은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으로, 중국 원나라 말기 1393년 무렵에 범립본(范立本)이 중국 고전들에서 빼어난 선현들의 말씀을 골라 편집한 책이다. 고려와 일본 네덜란드 등지로 책이 소개되면서 여러 이본(異本)이 생겨났다. 고려 충렬왕 때 예문관을 지낸 추적(秋適)이 《명심보감》 편저자라는 설이 있기도 했다.
이율곡 선생은 《명심보감》이 편집된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후학들이 이익만을 좇고 의로움을 잊을 것을 근심하여 옛 어른들이 지은 것이다.” ‘순리망의(徇利忘義)’, 즉 이익만을 좇고 의로움을 잊어버리는 추세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명심보감》은 우리 마음을 맑게 씻어 주고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보게 하는 귀한 거울 역할을 한다.
필자는 《명심보감》의 많은 말씀 중에서, 보다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며 현재에도 적용이 가능한 말씀들을 골라 원문을 풀이하면서 사유의 문을 열도록 배려했다. 《명심보감》은 도저한 지혜의 샘으로 자연히 지혜의 말씀으로 가득한 성경과 연결된다. 성경이야말로 ‘명심보감 중의 명심보감’이다.
《명심보감》은 특히 지혜서에 해당하는 ‘잠언’과 이어진다. ‘잠언’이 주로 예리하고 직설적인 촌철살인의 권면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명심보감》은 보다 웅숭깊은 면이 있다. 이 책을 통해 《명심보감》과 성경 말씀을 함께 묵상하는 가운데 지혜의 샘물을 한껏 길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명심보감》의 유익한 실례들은 글과 설교의 예화들을 풍부하게 제공해 준다. 그리고 한자 지식이 부족한 세대에게 한자 공부를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터이다. 새로운 기획에 과감히 도전한 세움북스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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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0 → 20,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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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과 초월의 갈림길에 선 청년의 영적 고뇌!
절대자 앞에 선 시대의 단독자! 그의 청춘 비망록이 펼쳐진다현실을 관통하여 신앙의 본질을 길어 내는 이 시대의 영성 문학가 조성기. 그의 자전적 성장소설 ≪야훼의 밤≫을 기존 네 권에서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고시와 종교의 갈림길에서 치열한 성장통을 겪으며 대학 선교단체의 분열을 경험하는 가운데 절대자의 진리를 갈구하는 한 청년의 고뇌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절실히 다가갈 것이다.
신과 인간의 본질을 통찰하는 국내 기독교 소설의 정수!‘오늘의 작가상’ 수상 작가이자 국내 기독교 문학의 선각자 조성기의 장편소설. 한 존재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 그 기억과 내면을 치밀하게 따라가는 자전적 성장소설 ≪야훼의 밤≫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필적하는 국내 기독교 소설이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는 과정,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경험하는 숱한 사건 가운데 인간과 사회, 그리고 종교에 눈떠 가는 청춘 비망록이기도 하다. 어느 대학생 선교단체의 내적 분열을 배경으로, 한 청년의 영적 방황과 홀로서기를 그린 이 소설은 세속적 가치와 초월적 가치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음의 고뇌와 실존, 영적 성장 과정을 보여 준다. 주인공 성민의 갈등과 방황은 이 시대 모든 젊은 날의 고백록이자 성장기다. 절대자 앞에서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과 주인공의 실존적 상황들이 진지하면서도 속도감 넘치는 책읽기로 독자를 이끌어 간다.
세속과 초월 사이, 영적 방황의 문학적 승화!주인공 성민의 영적 여정은 세속과 초월의 갈림길에서 이루어진다. 세속과 초월의 표상은 다름 아닌 ‘고시’와 ‘종교’다. 그는 부모님의 오랜 기대와 소망인 법관의 길을 따라가야 할지, 자신의 영혼이 갈구하는 종교의 길을 따라가야 할지 끊임없이 갈등한다. 일류 명문대 법대생인 성민이 세속 출세 길로 직행할 수 있는 사법고시를 택하지 않고 낮고 좁은 길로 이어지는 선교단체에 속하여 치열한 몸살을 앓는 까닭은 존재의 근본적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서다. 결국 종교의 길에 접어든 성민은 자신이 속하게 된 선교단체 안에서 내부 분열을 온몸으로 겪으며 다양한 ‘모순’에 눈뜨기 시작한다. 성민의 혼란은 독재정권 1970년대에 맞물려 더 심층적이고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묘사된 성민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심연에 내재된 한 가지 질문이 드러난다. “인간에게는 왜 신이 필요한가?” 결국 이 소설의 주된 화두는 ‘신’이다. 신의, 신에 의한, 신을 위한 소설인 셈이다. 한 인간이 성장과정 속에서 절대자를 발견하고 알아 가며 때로는 신을 부정하기도 하다가 끝내는 신에게 귀속되는 일련의 과정이 촘촘하게 펼쳐진다.
‘갈대바다’를 건너 ‘길갈’로……‘갈대바다’는 흔히 성경에서 ‘홍해’로 번역되어 있는 그 바다를 말한다. 히브리 원어로 얌 수프, 즉 갈대바다로 되어 있는 그 단어가 왜 홍해로 번역되었는지 설명하려면 꽤 긴 이야기가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갈대바다 저편’은 종살이로 상징되는 애굽을 벗어난 자유의 지역이다. ‘제1부 갈대바다 저편’에서는 주로 주인공 성민의 초ㆍ중ㆍ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 캠퍼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힘겨웠던 가정사적인 배경과 그 그늘을 벗어나는 서울 상경, 그리고 대학 입학 후 다양한 만남과 사건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독자를 흥미진진한 책읽기로 빨아들인다.
광야를 거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아름답고 광대한 땅, 가나안의 입구인 ‘길갈’에 이른다. 길갈은 ‘굴러간다’는 뜻이다. 무엇이 굴러가는가. 강대국 애굽 밑에서 당한 약소민족으로서의 모든 수치가 굴러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는 영적 여정의 새로운 분기점을 의미한다. ‘제2부 길갈’에서는 주인공 성민의 제대 후 복학 시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성민이 좀더 적극적인 회원이 되어가는 대학생 선교단체의 내면적 모순과 갈등, 분열과 함께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성민 자신의 내적 방황과 성장을 향한 정신적 여정이 씨줄과 날줄을 이루면서 극적 긴장감과 흥미를 고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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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0 → 9,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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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하여
-1,000만 기독교인이여, 예수가 폐지한 십일조에서 눈을 뜨라!한국교회가 언론에 질타를 받고 있다. 목회자들의 재정 횡령, 윤리와 자질 문제 등등. 이뿐만 아니라 부끄러운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중 이슈가 되는 것은 십일조(물질) 문제다. 어떤 목회자는 신자들이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 10퍼센트가 자기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기독교 역사상 십일조가 신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 심각하게 다루어진 적은 거의 없지만, 마치 기독교 신앙의 철칙인 양 영구불변의 신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 속에서 《십일조는 없다》는 한국교회의 오래되고 잘못된 관행을 깨고 교회개혁이라는 새 바람을 불어넣을 만한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1장에서 한국교회가 십일조를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를 말하면서, 2장으로 넘어가 십일조의 유래로 고대에 있었던 십일조 관행과 조세로서의 종교적, 정치적 기원을 다루면서 성경적 기원에 관한 문제도 다룬다. 3장에서는 토지소산과 가축의 10분의 1을 십일조로 바치게 된 근거와 십일조가 음식에 국한된 이유를 《성경》 안에서 다룬다. 4장과 5장에서 저자는 모세 율법 이후의 십일조와 포로 이후 시대, 즉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 말라기 시대의 십일조 문제를 다루면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를 도둑질하고 백성 또한 흠 있는 헌물을 드렸던 것을 지적하며, 목회자들이 <말라기> 3장 10절을 오용하여 신자들에게 십일조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점과 진정 예수께서 원하시는 예물은 무엇인지를 말한다. 6장에서는 초대교회 시대에는(4세기경까지) 십일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과 로마제국 시대에 채택된 십일조가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이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와 츠빙글리, 칼뱅 등이 십일조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설명한다. 7장에서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한 예수의 십일조 관련 말씀을 새롭게 해석하며, 한국교회의 십일조로 인한 웃지 못할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십일조는 그리스도인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설파한다. 8장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자들이 낸 십일조와 각종 헌금이 어떤 식으로 쓰이고 있는지와 목회자들의 공금 횡령과 부흥회의 변질을 소개한다. 마지막 9장에서 저자는 신약적인 측면에서 십일조의 모순점과 십일조 폐지의 증거들을 다루며 작금의 십일조에 대한 대안으로서, <고린도전·후서>의 연보捐補 원칙을 소개한다. 저자는 한국교회가 십일조에 목맬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연보 패러다임paradigm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신은 십일조를 내면서 죄책감을 느끼는가?
당신이 내는 십일조는 과연 성경적으로 올바른가?
당신이 내는 십일조와 각종 헌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아는가?
예수께서 우리의 죗값을 십자가에서 대신 치러주실 때 우리가 일생동안 바쳐야 할 ‘십일조’와 ‘헌금’까지도 다 바치심으로써 십일조 예물과 헌금 예물을 폐지하셨다(히브리서 9:9~10, 10:8~9). 그냥 폐지하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심으로 폐지하셨다.
이 사실을 믿을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돈을 일체 바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가?
구약성경은 물론, 신약성경에서는 더더구나 하나님께 돈(화폐)을 바친다는 관념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예수도 하나님께 돈을 바치라고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다. 예수의 줄기찬 메시지는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누가복음 6:38)는 말씀이었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2,000년 전에 예수께서 골고다에서 성전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도록, 할례나 십일조의 멍에를 메지 않아도 되도록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다. 이것을 우리는 선포해야 하고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속죄의 제사를 다 드리셨으며 우리 대신 예물까지도 다 바치신 사실을 선포해야 한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그 은혜에 감격하여 주의 사업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더욱 기꺼이 연보를 하게 될 것이다.
예수의 피로 사신 바 된 우리 그리스도인은 십일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소식은 십일조 노이로제에 걸린 이 땅의 수많은 신자를 자유롭게 하고 멍에를 꺾는 그야말로 ‘복음’이 될 것이다. 그러면 신자들은 수십 년 동안 무의식 속에 쌓였던 십일조에 대한 죄의식을 떨쳐버리고 생기에 넘쳐 헌신에 헌신을 더할 것이다.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으면 두려움의 영에 눌려 지낼 것이라고 한 켄달 목사 같은 십일조주의자들의 말이 얼마나 거짓말인지를 산 체험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선포는 예수를 믿고는 싶지만, 십일조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는 불신자들에게 전도의 문을 활짝 열어놓는 소식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더욱 넘치는 영적·물질적 축복 속에서 활짝 열린 전도의 문을 통해 수많은 젊은이와 불신자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