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being)와 비존재(non-being)
그 사이 경계선에 놓인
‘나’와 ‘너’를 ‘환대’한다“30호 이승윤의 사람을 향한 작은 시선” 읽기
한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낯선 멜로디와 몸짓으로 등장한 30호는 우리에게 작은 충격을 안겼다. 그 충격 안에는 자신만의 장르로 재해석된 음악뿐 아니라 그의 말들이 주는 울림도 있었다. “나는 환대를 받았다”, “존재의 의의를 구체화하겠다”, “나는 경계선에 서 있다”. 환대, 존재, 경계선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단어이자, 지금 이 시대 많은 이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말이기도 했다. 30호가 꺼낸 3개의 단어는 멀리 토론토대학교의 한 젊은 철학도를 사로잡았다. 그는 이승윤이 말한 이 세 가지 렌즈를 그의 음악뿐만 아니라 이 세상과 자아를 고찰할 수 있는 유익한 도구로 사용하며 우리 시대의 환대, 존재, 경계선에 대한 짧은 에세이를 펴냈다.
‘환대’, ‘존재’, ‘경계선’
3가지 렌즈로 보는 세상이 책은 이승윤이라는 현상을 매개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인문학적 탐구를 시작한다. 지금 개인의 삶, 특히 주변부로 내몰리고 있는 여러 세대들의 삶은 불안한 생존의 줄타기를 하고 있다. 들려오는 정보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겨 절망의 골은 깊어진다. 많은 이들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선에 서 있다. 그러나 그 절망 가운데에서도 마치 이승윤처럼 경계선에 서서 자신의 존재를 구체화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존재를 향해, 진짜 꿈을 향해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이들이 있다. 여기서 저자는 이승윤의 장르를 가리켜 ‘존재를 위한 노래’라고 말한다. 그의 노래는 경계선 너머 좌절이 아닌 새로운 출발로 향해 가는 대안을 보여 준다.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소외된 다른 이들을 생각하게 한다. 이승윤 역시 주류가 아닌 ‘방구석 음악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받은 관심을 ‘환대’라고 해석했다. 주류인 심사위원이 아닌 대중에 의해 끌어올려진 환대였다. 그는 환대를 받는 객체로서 이방인이고 나그네, 손님이었다. 이 책의 저자 김희준은 ‘환대’를 가리켜 지금, 여기, 나의 것이 아닌 다르고 낯선 모든 것, 모든 이들에 대한 환영이라고 정의한다. 설사 그 낯선 것이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하며 그로 인한 막연한 두려움과 닿아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환대’야말로 경계선 너머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열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 김희준이 말하는 《환대》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 예를 들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타워즈>, <대부> 등 위대한 작품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그 방대한 이야기가 결국 특정한 한 개인에서 시작하고 매조지어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라는 데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개인, 사회 시스템 속에서 소모되어 가지만 위대한 서사의 출발이자 종착역이 되는 바로 그 개인을 위로하길 원했다. 이 책에 실린 내 글은 그 경계가 모호한 글임에 틀림없다. 팬심이 담긴 글에는 철학이 담겨 있고, 철학적 담론이 들어찰 때면 대중음악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경계를 흐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구심점엔 이승윤이라는 특정한 한 음악인이 자리하고 있다. ‘싱어게인 30호’. 모든 것이 닫힐 대로 닫혀버린 팬데믹의 한 가운데에서 피어난 꽃 하나. 그를 통한 내 사유의 발로는 이승윤이라는 한 개인의 특정함을 너머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와 그에 대한 소중함으로 전진하고자 하는 자의식의 발현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에서 음악이라는 보편적 도구를 통해 특정한 인간 개인의 삶과 가치를 풀어내는 음악인 이승윤처럼 나만의 철학적 도구를 사용해 그의 음악과 그 음악이 들려지는 사람들과 세상에 대해 사유하고자 시도했다. 그 덕분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학문적인 글인지, 개인적 에세이인지, 글쓴이인 본인조차 그 경계를 선뜻 나누지 못한다. 그러나 이 사유와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나 또한 그 어딘가에 나만의 경계를 그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어디까지 허용되고 이해될 수 있을지는 이 책을 읽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이 책은 음악인 이승윤이라는 한 사람을 통한 음악과 예술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지만 결코 난해하거나 복잡한 이론과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 대중음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법한 음악과 예술에 투영하는 자기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에 관한 사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예술과 인간에 대한 조망은 이승윤이 방송에서 언급했던 환대, 존재, 경계선이라는 세 가지 창으로 구분된다. 이 세 창은 나뉘어져 있지만 세상을 보는 환대의 통로로서 연결된다. 환대는 음악과 닮았다. 무수한 가능성들 사이에서 꽃 피우는 인간의 생명처럼, 연주되고 들려지는 음악은 하나의 소리를 넘어 제한된 음들의 조화와 환대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각각의 음들이 모여 곡이라는 하나의 환대적 공동체로 연결되는 것은 인간의 생명이 언제나 공동체를 향하는 것과도 닮아 있다. 공동체와 음악 모두 오롯이 뚜렷하며 견고하게 선 한 사람의 실존을 요구하며, 이 홀로 섦은 단절과 차단이 아닌 생을 향한 의지와 사랑을 갈망함으로 지속된다. 그 어느 누구보다 생의 경계에서, 삶의 둘레 어딘가에서 지금을 헤쳐 가는 당신을 응원하며 이 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