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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 윌리엄 윌버포스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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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 가트 린/송준인  |  출판사 : 도서출판 두란노
발행일 : 2001-04-25  |  신국판 (153×225) 300p  |  89-531-0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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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 윌리엄 윌버포스의 생애

1787년 10월 28일, 27세의 젊은 영국 국회 의원 윌리엄 윌버포스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내 앞에 두 가지 큰 목표를 두셨다.
하나는 노예 무역을 금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습을 개혁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 사회를 개혁하려는 이러한 윌버포스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동하여 그를 '영국의 양심'이라 불렀다. 그의 영향으로 영국의 젊은 국회의원 3분의 1이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되었다.

출세 가도를 보장받던 젊고 유능한 국회 의원 윌버포스는 어느 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개인적 야망을 버린 채,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로 결심한 윌버포스는 암살 위협과 같은 중상 모략과 비방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 소명으로 받았던 '노예 무역 폐지'와 '관습 개혁'을 위해 끝까지 달려나갔다.
뜻을 함께 한 친구들과 영국의 뜻 있는 성직자들,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외롭고 기나긴 싸움을 하던 그는 하나님 앞에서 뜻을 세운 지 56년 만에 결실을 보았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영국이 노예 제도를 통해 얻는 2천만 파운드의 돈을 포기하는 날을 목도하고 죽게 하시니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란 고백을 남기고 그분께로 갔다.

윌리엄 윌버포스의 책도 있습니다. 아래 그림을 클릭하세요.

[본문 183~187쪽 '13. 행동하는 공동체'중에서]

윌버포스와 그의 친구들이 어떻게 팀워크를 이루며 활동했는가를 알려면 1813년 동인도 회사의 특허장에 대해서 그들이 벌인 운동을 연구해 보면 어느 정도 그 윤곽을 잡을 수 있다. 그 당시 동인도 회사는 20년마다 의회의 검토를 받아야 하는 특허장에 근거하여 영국령 인도를 통제하고 있었다. 1793년에 윌버포스는 그랜트가 초안한 두 건의 결의안을 상정했다. 그 결의안은 동인도 회사가 적합한 사람들을 선발해서 인도의 각기 다른 여러 지역에 교목들과 교장들을 파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 결의안이 하원에서 받아들여졌으나 그 다음에는 '잠에서 깨어난 거인과 같은 인도의 의회를 동요시켰다.' 동인도 회사의 중역들은 특별 회의를 열어 윌버포스의 의도가 폭력에 의해 기존의 제도를 분쇄하고 기독교 신앙을 인도의 원주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상업적인 문제가 연루됨에 따라 경각심을 가지게 된 의회는 그 법안의 세 번째 목회에서 윌버포스의 결의안이 들어 있는 대목을 삭제해 버렸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은 영국과 인도의 관계가 순전히 상업적이어야만 하고 영국의 책임은 오로지 정치적이어야만 한다는 견해에 있었다. 이는 당시에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진 보편적 견해였다. 영국이 인도의 교육을 장려한다던가, 스스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 인도에 살던 영국인들이 인도 여자를 첩으로 삼는 일은 아주 평범한 일이었다. 1810년에 동인도 회사가 펴낸 공식 책자인 회사 편람에는 동인도 회사의 젊은 사원들을 위한 지침들이 실려 있는데, 무려 48쪽을 첩의 유지, 화장, 장식 등 인도인 첩들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데 할애했다. 그 편람은 그런 여인을 16명이나 동시에 데리고 있는 한 영국 노인에 대한 이야기도 싣고 있다. 어떻게 그 16명의 여인들을 돌보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에게 쌀을 조금씩 주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합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기독교 선교사 도입에 대한 반대가 격렬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인도의 고대 문화를 고려하여 반대했지만, 대다수는 선교사의 존재 자체가 사업을 방해하고, 인도 군인들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며, 인도에서의 영국인의 생활 방식을 노출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윌버포스는 힌두교의 신비적인 요소나 철학적인 원리들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다. 그 당시에는 힌두교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항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힌두교와 관련된 참혹함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죽어 화장할 때 과부 된 아내를 함께 화장하는 것, 인간을 제물로 드리는 것, 카스트 제도의 참혹함 등이다. 이외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확신 때문에 윌버포스는 어느 곳에서든지 그리스도의 대사들을 파송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인도 입국 금지를 '영국의 도덕심에 가장 더러운 오점이라 할 수 있는 노예 무역 다음으로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인도에 있을 때 이미 선교사 문제를 최초로 제기했던 그랜트와 쇼어는 의회가 선교사들을 배제시키자 똑같이 분개했다. 쇼어의 말대로 인도에 있는 유럽 사람들은 '스스로를 기독교화 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클래펌의 형제들은 영국과 인도에서 동시에 활동을 시작했다.
그랜트는 1794년에 동인도 회사의 중역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리덴홀 스트리트에 있는 그 회사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의회에서 그 회사를 대변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편, 쇼어는 인도로 다시돌아가라는 권유를 받았다. 윌버포스가 피트에게 그가 인도의 총독을 맡아야 한다고 설득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위대한 총독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행동 규범들을 정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인도성 대신이자 영국과 인도의 역사가였던 존 케이 경은 그에 관해 이렇게 진술한다. "부패하기가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쉬웠던 시대에 그는 가난한 궁핍 속에서도 전혀 굽힐 줄 모르는 고결함을 보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위대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쇼어와 그랜트는 선교사 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큰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쇼어는 많은 교회를 지었고 거기에 소수의 목사들이 파송되었다. 그러나 위대한 침례교 선교사 윌리엄 캐리는 덴마크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은신해 있어야만 했다. 그래도 그들은 모든 기독교 선교사들을 영국으로 돌려 보내라는 요구를 묵살했다. 그러나 1806년에 인도의 일부 군대가 폭동을 일으켰다. 어떤 사람들은 그 폭동의 원인이 '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클래펌 사람들은 특허장이 다시 의회의 재가를 받기 위해 상정되는 해인 1813년에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지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클래펌의 '각료 회의'는 18개월 전부터 그 운동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각자 특정한 책임을 맡았다. 기즈번은 성직자들을 일깨우는 일에 착수했다. 맥콜리는 회람장의 초안을 잡기 시작했고, 바빙턴은 노예 무역 폐지 운동 중에 처음으로 사용된 본을 따라 '백 건의 청원서를 꾸미는 주모자'로 설정되었다. 그랜트는 의회 앞에 제출할 그의 "관찰 소견서(Observation)"를 준비했고, 쇼어는 인도에서 돌아와 테인머스 경이 되어 상원에 증거를 제시한 준비를 갖추었다. 한편 윌버포스는 복음주의 성향을 가진 수상 퍼시벌을 면담하고, 일련의 '정치적 조찬 모임'과 '수많은 편지'에 관여했다. 그는 해너 모어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의회의 법안들에 대해서 의회 안에서보다 의회 밖에서 더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즈번은 종교계의 반응이 미온적이고 더 심한 퇴보가 예상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812년 5월 11일, 윌버포스는 손턴과 함께 바빙턴의 집에서 특별한 논의를 위한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그는 퍼시벌 수상의 덕을 칭찬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빙턴이 매우 흥분한 채 도착해서 퍼시벌이 하원의 로비에서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당시의 행정부에서는 누가 퍼시벌을 계승하든지 간에 그처럼 헌신된 마음을 가지고 그 문제를 다루어 줄 것 같지 않았다. 드디어 1813년 3월에 토론이 시작되었을 때, 예상대로 하원은 그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윌버포스가 한 친구에게 써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진실은, 정말로 무서운 진실은, 하원의 10분의 9가, 아니 하원의 거의 대다수가 신앙의 친구들이 내놓을 그 어떤 동의안에 대해서든 반대할 것이라는 사실일세."
그리하여 '각료 회의'는 전보다 더 빈번해졌다. 심지어 소중한 주일이 안식까지 빼앗곤 했다. 윌버포스는 또 한 차례의 새로운 면담일정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증가한 청원 운동이 시작되었다. 윌버포스는 노예 무역을 반대하는 청원을 제기한 사람들 개개인에게 친히 편지를 썼다. 그랜트의 조력자들 중 한 사람인 클로디어스 뷰캐넌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모든 대도시들과 중소 도시들이 청원 운동을 벌이게 되면, 5월 말까지 그 일은 새로운 양상을 띨 것이다." 결국은 그의 말대로 되었다. 그해 6월에 5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은 1,837개의 청원서들이 준비되었고, 국회 의원들은 나라의 이익이 투쟁적으로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찰스 콜슨의 서문
추천사
저자 서문
머리말

1. 노예 무역의 중심지 영국
2. 헐 소년, 하원 의원에 당선되다
3. 윌버포스와 친구들
4. 요크셔에서의 승리
5. 회심
6.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소명
7. 노예 무역 폐지 운동
8. 마침내 얻은 승리
9. 영국 사회의 상황
10, 또 하나의 소명, 관습 개혁
11. 포화 속의 평온
12. 클래펌 공동체
13. 행동하는 공동체
14. 사람을 낚는 어부
15. 「실제적 견해」
16. 개혁자의 가정 생활
17. 노예가 먼저냐, 동포가 먼저냐?
18. 노예 해방
19. 정치가를 잃었는가, 찾았는가?

후기

참고 문헌
노예 무역은 영국 경제에 수백만 파운드의 이익을 가져다 주었고 그 혜택은 정부에서부터 권력자들의 우아한 응접실까지 널리 퍼져 있었다. 윌버포스는 자기 이익이라는 독재자와 대결을 벌였다. 그는 그런 용기의 대가로 모욕과 반대와 수치를 당했다. 그러나 이제는 거꾸로, 자유라는 새로운 유산을 그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된 수천 명의 남녀 흑인들에게서 그의 이름은 존귀히 여김을 받게 되었다. 그의 투쟁은 국가의 이익뿐 아니라 자신의 이익까지도 희생시켰다. 많은 역사가들은 윌버포스가 노예 무역의 금지라는 인기 없는 투쟁을 하지 않았다면 윌리엄 피트에 이어 수상직을 계승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로 확고하게 결심하던 날, 이미 윌버포스의 개인적 야망은 사라졌다. 이는 기독교 신앙이 궁극적으로 자기 이익과 자부심, 성공을 지향하고 있다고 너무나 자주 치부되는 우리 시대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증언이다.

- 찰스 콜슨의 서문에서


오늘의 암담한 현실에서 사람들은 체념조로 말한다. "이런 총체적 부패 속에서 한 사람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윌리엄 윌버포스의 삶은 한 사람의 헌신된 하나님의 사람, 깊은 영성과 예리한 실력을 겸비한 평신도의 영향력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 한홍 목사(「거인들의 발자국」저자)
가트 린
영국의 저널리스트로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법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역사학 분야의 평생 연구원인 그는 현재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다른 저서로는 개신교와 카톨릭을 통틀어 용기 있는 신앙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Brave Men Choose, 존 웨슬리에 관한 책 Strangely Warmed, 논쟁을 불러일으킨 크리스천 정치인 프랭크 부흐만에 관한 최초의 전기 On the Tail of a Comet: The Life of Frank Buchma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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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 윌리엄 윌버포스의 생애
저자가트 린
출판사도서출판 두란노
크기신국판 (153×225)
쪽수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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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01-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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