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당신은 어떻게 듣고 받아들이고 행동하는가?”
“삶의 분주함으로 인해 예수님의 진심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는가”
예수님의 가장 유명한 설교를 제대로 읽고 있지 않은 현대인들을 위한 책
당신을 위한 산상수훈이 여기 있다!“산상수훈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이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있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재물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혁명적인 부르심을 무시하고 각자의 삶을 바삐 달려갈 때가 너무 많다. 그리고 문득 그 걸음이 너무 벅차 뒤를 돌아보거나, 멈춰 서 돌아보면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방향을 잃고 달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이들을 위한 책이 여기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가?
누구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다.”이 책의 저자 스카이 제서니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재치 있고, 날카롭고, 참신한 시각으로 조명한다. 산상수훈에 익숙해 자신을 위한 말씀으로 듣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일침을 날린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산상수훈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감동의 자리로 이끌어 준다. 총 9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는 본문의 이해를 돕는다. 더불어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현시대에 비추어 설명한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산상수훈이 예수님 시대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설교가 아닌, 지금 현재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말씀임을 깨닫게 한다.
“산상수훈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을 원한다면,
나부터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분주한 삶으로 인해 예수님의 진심을 무시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그분의 말씀을 진심으로 받는다면 우리 삶은 지금과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을 원한다면, 먼저 내가 그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사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 편안한 신앙생활과 불순종을 정당화하기 위해 저지르고 있는 행동을 말씀에 비춰 보라. 현시대에 맞게 산상수훈을 읽은 이 책을 통하여 말씀을 삶에 적용해 보길 바란다.
[프롤로그]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쉬웠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가 점점 포스트 기독교 세상으로 변해가는 ‘지금만큼’ 힘든 적은 없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오늘날에는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고 매주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나날이 줄고 있다. 반면, 어느 종교 집단에도 속하지 않은 종교인들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이런 통계의 변화와 함께 성경을 도덕적 혹은 영적 지혜의 근원으로 삼는 사람들이 전에 없이 드물다. 이제 전통적인 기독교 윤리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은 무관심과 적대감 그 사이에 위치한다.
그 결과, 한때 세상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던 크리스천들이 세상으로부터 냉대와 배척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사회가 싫어하는 신념과 가치를 고수한 대가라고 여기기 쉽다. 실제로 많은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박해를 당하고 있다고 외치며, 희생자처럼 행동한다. 물론 실제로 크리스천이 부당한 적대감의 희생자가 된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사회적 배척에 맞서 많은 크리스천이 예수님을 위해 고지를 탈환하겠다는 목표로 정치적 군대를 이루어 문화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사회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우리가 신앙을 꽉 부여잡은 손을 조금만 느슨하게 풀고 성경의 가치를 세상의 가치에 조금만 양보하면 세상에서 좀 더 환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라면 어떻겠는가? 오늘날 기독교의 근본적인 문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세상의 배척을 받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그 가르침을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
오래전 우리 교회에서는 산상수훈으로 성경 공부를 진행했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유명한 설교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윤리적 가르침들을 담고 있다. 성경 공부의 첫날, 산상수훈 전체를 읽은 후 학생들에게 물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실제로 이 명령대로 살기를 바라실까요?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손을 들어보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충격을 받은 나는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왜 우리는 산상수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요?”
“아마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요.” 한 사람이 대답했다.
“예수님은 그냥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우쳐 주고 싶으셨던 겁니다. 완벽한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 준 다음, 아무도 그런 삶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신 거죠.”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아마도 그들이 생각하는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설교하시며 수시로 제자들을 바라보며 윙크를 하셨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 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그들은 예수님이 이 가르침에 불순종했을 때 따르는 위험에 대한 경종으로 설교를 마무리하셨다는 점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이 예수님께 충성을 다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산상수훈을 현실에 맞지 않는 이상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을 원한다면 …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과 그분께 실제로 순종하는 것, 이 둘 사이의 긴장이 현대 기독교가 도덕적 권위와 영적 신뢰성을 잃어버린 결정적인 이유다. 주일이면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신 주님을 열심히 찬양한다. 하지만 월요일만 되면 두려움과 분노로 인해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기를 원한다.
현대 크리스천들이 너무도 쉽게 산상수훈을 무시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독교를 바라보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수많은 리서치 기관들이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복음주의 크리스천들도 세상 사람들만큼이나 쾌락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성적으로 타락한 삶을 살고 있다.”2 기독교 리서치 전문가인 조지 바나(George Barna)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20세기 중반 이후의 기독교는 대체로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혀 예수님의 제자답게 행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