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있는 몸은 무조건 치료되기를 간구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기도 제목일까? 혹시 그런 시각에는 장애가 있는 몸은 다른 몸보다 가치가 없거나 열등하다는 가치관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장애인, 여성, 학자, 그리스도인인 에이미 케니는 학교와 병원과 교회와 사회에서 경험한 장애인 차별과 배제를 솔직하고 절실하게 이야기하지만, 품위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무심코 행하는 행동과 언어의 기저에 장애인 차별 의식과 능력주의가 깔려 있음을 드러내고, 기독교 공동체가 장애인을 올바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들과 함께하는 교회를 세워 나가도록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이 책은 저자가 장애인으로서 겪은 차별과 혐오, 장애인의 관점에서 이해한 성경 말씀, 대중문화에 반영된 장애인에 관한 편견, 미국 장애인법의 맹점을 비판한 내용이 균형 있게 어우러진다. 저자는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 저는 자들”과 비장애인들이 모두 즐겁게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잔칫상을 함께 차리자고 우리 모두를 초대한다.
[출판사 서평]장애를 극복한 서사를 지닌 ‘슈퍼 장애인’이라는 판타지이 책의 저자인 에이미 케니는 왼쪽 다리에 장애가 있어서 전동 스쿠터를 타거나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장애로 인해서 어렸을 때부터 병원에서 수많은 검사와 치료를 받느라 힘들었고 학교나 사회에서 차별당하고 소외되기도 했지만, 케니는 자신의 삶이 “재앙도 아니고 그 어떤 결핍도 없다”고 말한다. 장애는 자기가 지닌 정체성의 일부이고, 장애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케니는 장애 때문에 자신이 무가치하거나 공헌할 능력이 없는 사람(짐짝)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무진장 애쓰다가도, 막상 그 일에 성공해서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아예 잊어버리고 장애를 “극복”하는 일을 장애인만의 책임으로 떠넘기면 어쩌나 하고 염려하기도 한다.
몸과 마음에 위계질서가 있다고 주장하는 신앙과 시스템2017년 조사(Ruderman Family Foundation)에 따르면, 북아메리카에서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나 친척이나 보모에게 살해당하는 아동이 평균 일주일에 한 명이다. 2018년 미국 〈장애인에 대한 태도와 평등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67퍼센트나 되는 사람들이 장애인과 말을 나누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고 대답했다. 장애인들은 미국 인구의 25퍼센트, 전 세계 인구의 15퍼센트를 차지하지만, 그 존재만으로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치유된” 혹은 “정상”이라고 쓰인 작은 박스에 들어가지 않는 몸에 위화감을 느낀다.
비장애인에 비해 장애인들은 열등하거나 가치가 떨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장애인이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장애가 열등하다는 선입견에서 생겨난 것일 뿐이다. 케니는 대중문화에 나타난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장애인을 자선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제도의 문제점, 장애를 부정적인 은유로 사용해서 장애인들의 마음에 상처 주는 일 등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 ... 내가 그들을 곧은길로 가게 하리라”(렘 31:9)사람들은 장애를 하나님의 축복이나 예언자적 증언으로 여기는 성경 말씀을 섣불리 지나치는 경향이 있다. 케니는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라고 묘사한 다니엘서 7:9 말씀에서 불타오르는 휠체어를 타고 계신 하나님을 상상한다. “...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 ...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길로 가게 하리라”(렘 31:8-9)라는 말씀에서는 장애인을 위해 경사로를 놓는, 접근 가능성을 높인 길을 준비하신 하나님을 만난다. 그 밖에도,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 하나님께 언약을 받으면서 다리를 절게 된 야곱의 이야기, 다리를 저는 므비보셋을 왕의 식사 자리에 초대한 다윗 왕 이야기, “잔치를 베풀거든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등을 케니는 장애인의 관점에서 풍부하게 재해석한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올 수 있도록 예배당 지붕이라도 뜯는 교회현대의 많은 교회에서는 장애인과 한 번도 마주치지 않고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우리는 장애인들을 보면 수군거리고 곁눈질하는 것으로 예배당에서 쫓아버리지는 않았는지, 장애인들이 예배에 지장을 준다고 불평하지는 않았는지, 장애인에게 다가가는 것을 가장 인내심 많은 성도가 해야 할 특별한 소명으로 여기지는 않았는지, 장애인이 예배 때 소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직하게 대답해야 한다.
비용과 편의성 문제를 핑계 대며 장애인 주차 공간이나 경사로 등 장애인 시설 설치를 거부하는 교회 성도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케니는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기 위해 예수님이 계신 곳의 지붕을 뜯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어떤 장애를 가진 사람이든 쉽고 편안하게 교회에 올 수 있도록, 주차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이고 예배당 지붕까지라도 뜯는 교회가 있다면, 그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는가?
장애가 축복이 되고 하나님 언약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장애인들은 자신의 장애를 정체성의 일부로 여긴다. 이제 교회는 장애인을 기적적인 치료 이야기의 주인공이나, 자선과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교회와 비장애인에게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온전한 지체로 대우하고 그들의 비범하고 독특한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케니는 교회 내에서 무심코 자행되는 에이블리즘을 깨우쳐 주고 기독교 공동체가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해서 장애 정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교회는 장애인의 몸과 비장애인의 몸이 동등하게 전인적으로 여겨지고 가치를 인정받으며 사랑받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책임이 있다.
[대상 독자]- 장애인의 비범한 삶과 에이블리즘의 문제점을 다른 이들에게 설명할 방식과 언어를 찾고 있는 장애인
- 장애인을 환대하고 장애인이 접근하기 쉬운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목회자
-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 장애인을 포용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자 하는 비장애인
- 몸과 마음에 위계질서를 부여하고 우열을 매기는 세상에 저항하고 싶은 사람들
- 아무도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그 존재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