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는 신약성경 4복음서에 나오는 내용 중에서 ‘길 위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서 조기호 목사는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 손가락질 받고 멸시를 받는 사람들, 사회의 기득권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어떻게 삶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었는지를 말한다. 저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생생한 그림으로 보여준다.
“사회적 제약과 편견으로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던 죄인들이 예수님에게 다가서서 자신을 드리는 뜨거운 눈물에 의해, 거룩함의 입맞춤에 의해, 그리고 예수님의 몸을 씻는 정결 의식을 통해, 인생의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개인과 교회가 예수님께서 ‘따라오라’고 하신 ‘예수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도전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한다. “『길 위에서 만난 예수』는 허둥지둥 인생길을 걷는 자에게, 괴롭게 인생의 노를 젓는 사람에게, 그리고 진리 안에서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에게 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교회에서도 소외받고 아무도 다가서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말을 건네려고 애쓰는 신자들에게 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출판사 서평]
길 위에서 만난 예수
길을 걷는 사람들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모든 사람들은 ‘길 위’에 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한 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떤 길을 걷고 있습니까?”
인생에 대한 은유적 표현들이 많다. ‘인생은 드라마와 같다.’ ‘인생은 등산과 같다.’ ‘인생은 고해와 같다.’ 등등. 특히 인생을 ‘길’ 비유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저자는 신약성경 4복음서에서 길 위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살피면서 ‘인생은 어머니의 태에서 나와 길에서 여행을 하며 살다가 죽는 여정’으로 본다.
‘당신은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당신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인생길을 따라 걷는다. 그 길이 바른 길인지 그릇된 길인지 고민하지 않고 터벅터벅 앞선 자의 뒷모습을 보고 인생길을 걷는다. 자신이 걸어가는 길이 평탄한 길인지 험악한 길인지, 넓은 길인지 좁은 길인지, 죽음의 길인지 생명의 길인지, 고민하지 않은 채 말이다.
또 길이란, 항상 대로처럼 넓게 나 있는 것이 아니다. 걷다 보면 길이 없는 곳, 막다른 길에 서 있을 때도 있다. 길이 없기에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도 없다. 그것처럼 인생을 살다 보면, 길이 없는 경우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길이 없다고 가던 길을 포기하거나 또는 좌절하거나 절망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길이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내가 곧 길이요’라고 말씀하셨다(요 14:6).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의 길’을 걸어가셨다.
이제 예수님은 길이 없어 낙심하는 사람들, 가는 길이 험난하다고 주저앉는 사람들, 포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곧 길이니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신다. 만일 우리가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님의 손을 잡고 예수님을 따라가면 그때부터는 내가 사는 인생길이 아닌, 예수님이 나를 사는 예수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저자는 『길 위에서 만난 예수』라는 이 책을 통해 이 사실을 끊임없이 말하고 읽는 독자들을 설득한다. 생명의 길, 살 수 있는 길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고 말이다.
공평하지 않은 삶안타깝게도 삶은 공평하지 않다. 똑같은 시간과 기회가 주어질지라도 개인의 능력과 수준의 차이로 공평함을 누리지 못한다. 더구나 사회는 이런 개인의 능력의 차이를 이용해 사람을 줄 세우고, 서열을 매긴다. 그리고 무능력한 사람, 문제가 있는 사람, 함께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차별하고 배제하며 소외시킨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누리는 기회들과 기득권과 힘을 더욱 공고히 한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어떤 사회에나 약자들이 있다. 그들이 고아와 과부이거나, 여성이거나, 혹은 건강하지 못한 병자이거나,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이거나, 누구든지 약자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기회를 누리지 못한다.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갖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살 수 없다. 심한 차별과 배제, 정죄와 소외를 당하며 산다. 저자는 길 위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모습에서 불공평한 우리 사회의 모습, 교회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회복시키시는 예수님, 살만한 인생하지만 저자는 개인과 공동체와 사회의 문제만을 지적하지는 않는다. 길 위에서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변화와 새로운 삶을 통해 소망을 이야기한다. 믿음이 적어 무서움과 두려움에 떠는 자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안정을 찾는다. 혼돈과 죽음, 그리고 악의 세력이 판을 치는 곳에서 예수는 말씀 한 마디로 고요하고 잠잠하게 만든다.
마을 공동체로부터 추방을 당하고 무덤 사이에서 지내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된다. 사람들의 폭력과 배제와 소외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후 새사람이 된다.
군대 귀신에 들린 사람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온전한 정신이 회복하고, 자기 삶으로 복귀한다. 바리새인들이 정결 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회에서 죄를 지은 여성은 설자리가 없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만나며 많은 죄를 사함 받고 공동체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인종적, 혈연적, 지역적 차별을 받는 사람도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새사람으로 변화된다.
혐오와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 된 사람도 예수님을 만나면 사랑받는 사람이 된다. 길에서 예수와의 만남이 자신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키고, 삶을 변화시키며, 인생과 운명을 변화시키는 혁명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실패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체념한 채 예수 따르기 전의 생활, 즉,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갔다. 부활하신 예수는 그런 베드로를 찾아오셨다. 그리고 친히 밥상을 차려주셨다. 더 나아가 실패한 베드로를 다시 부르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일으켜 주셨다. 참 목자이신 예수님은 실수하고 미처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내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사역에 참여하도록 적극적으로 이끌어 주셨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예수께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이렇게 회복시키고 변화시킨 일들을, 새로운 삶을 사는 출발점을 맞이하게 만든 일들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새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생은 살만하다’고 한다.
“성공한 사람들만 있는 사회나 종교에서, 그리고 삶에 영향을 주고 힘을 행사하는 그런 사람만 살만한 것이 아닙니다. 불쾌한 냄새가 나고 우울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살만합니다. 그 이유는 신음의 자리에 찾아오시는 예수와 만날 때 ‘살만한’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 때문입니다.”